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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영혼은 시를 통해서 무덤 너머에 있는 모든 찬란한 것들을 엿볼 수 있다고 보들레르는 말했다. 이때 ‘무덤 너머’라는 말은 물론 ‘죽음 이후에’라는 말인데, 이를 풀어서 말하자면 ‘우리의 정신이 이 세상에서 어쩔 수 없이 견뎌내야 하는 모든 물질적인 제약을 벗어버린 후에’라는 뜻이 된다. 사후세계를 전혀 믿지 않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보들레르가 생각했을 한 점 티끌도 없이 완전히 찬란한 어떤 빛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보들레르는 가난한 노동자들이 죽음 뒤에 얻게 될 휴식처를 상상했고, 동반 자살한 연인들이 죽음 뒤에 이루게 될 완전한 사랑을 꿈꾸기도 했다. 죽음 속에서만 새로운 것을 찾을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적은 없다. 이 세상에서 그 빛을 볼 수는 없지만, 죽는 날까지 내내 시를 씀으로써 저 빛 속의 삶과 가능한 한 가장 가까운 삶을 이 땅의 우여곡절 안에서 실천하려고 했다. 이 열정은 현대시의 윤리가 되었다.
경기도 어느 지역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열아홉 살 청년이 평소에 알고 지내던 한 10대 소녀를 모텔로 끌어들여 성폭행을 하려던 끝에 목 졸라 살해했다. 그가 잔혹하게 시신을 훼손한 이야기는 차마 입에 담기조차 어렵다. 그는 인터넷 어느 구석에 남겨 놓은 글에서 자신이 살해한 여자에게 “활활 재가 되어 날아가세요”라고 썼다. 악감정이건 좋은 감정이건 어떤 감정도 없었다는 말끝에 “날 미워하세요”라고 덧붙인 것을 보면, 그 무도한 마음속에도 후회의 감정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는 지옥에 가고 싶었던 자기에게 동반자가 필요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말도 했다. ‘지옥’을 넓게 해석하자면 죽음 뒤의 세계 전체를 가리키는 말일 터인데, 그 어둠의 세계에 가려 했다는 고백이 빈말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것은 그가 두 해 전에 인천의 월미도를 찾아가 자살을 시도한 적도 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슬픈 감정도 분노도 없이 “오늘 이 피비린내에 묻혀 잠들어야겠다”는 말도 동일한 감정의 표현이다. 그에게는 죽음의 세계에 대한 어떤 정염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경향DB)
그의 평소 생활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사실이 알려졌다. 그는 기타에 특별한 애착을 나타냈다. 그는 이름 있는 기타를 소유했으며, 그가 마지막까지 지니고 있던 기타는 이미 생산이 중단되어 전 세계에 20대밖에 남아 있지 않은 명품이라고 한다. 기타에 대한 그의 열정이 깊었다는 것은 그가 악기수리를 전문으로 하는 프랑스의 어느 예술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유학정보를 모으고 있었다는 사실로도 알 수 있다. 그의 기타연주 실력도 상당한 정도였다고 하니,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보면 그가 보인 죽음의 열정에는 어느 정도 예술가적 기질이 결부되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와 예술가들, 좁게 말해서 시인들 사이에는 명백한 차이가 있다. 보들레르의 열정을 이어받은 현대의 시인들은 ‘무덤 뒤의 찬란함’에 자주 도취하면서도, 현실에서는 그 빛을 일상적 실천의 등대로 삼는다. 언제나 물질의 제약을 받는 이 세상에 그 찬란한 빛을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도달할 수 없는 곳을 향해 가는 발걸음은 바로 그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결코 멈추어지지 않는다. 시인들에게는 다른 세계의 빛이 이 세계의 실천을 지시한다. 저 불행한 청년은 이 실천이 두렵고 세상의 온갖 장애가 두려워, 이 세상을 파괴하고 저를 파괴하였으며, 마침내 저 찬란한 빛을 꺼버림으로써 자신이 가고 싶어 했던 죽음 뒤의 세계마저 지옥으로 만들었다. 그가 어떤 글을 써서 어떻게 자신을 과시하건 그는 패배한 사람일 뿐이다.
문제는 이 패배가 그에게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흉악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반복되는 일이지만, 폐지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사형제도를 부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없애버려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나 같기에 우리의 패배를 증명하는 꼴이 된다. 게다가 문제는 없어지지 않는다. 흉악범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일상이기 때문이다.
황현산 | 고려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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