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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 | 시인



 

고향에 있는 백양사는 놀이터처럼 자주 드나들던 따뜻한 절이다. 부도밭을 지나 절에 들어갈 때 맨 먼저 만나는 이는 덮쳐올 듯 기립한 사천왕(四天王)이었다. 퉁방울눈과 우람한 덩치의 형상 사이를 잰걸음으로 지나며 나는 늘 목이 쑥 움츠러들게 무서웠다. 


우리 사남매가 늦게까지 잠을 안 자면 어머니는 나지막하게 말씀하셨다. “애기들이 밤 늦도록 안 자면 사천왕이 잡으러 온다.”


이명박 정권이 4대강 사업을 시작한 후로 나는 4대강 사업이라는 말이 사천왕보다 무서웠다. 절대 불가한 이유와 이론, 하소연과 부당함을 많은 이들이 외쳤으나 그들은 강을 살리는 사업이라 우겼고, 불리한 입장에서 빠져나갈 요량을 거침없이 마련했다. 


(경향신문DB)


역사도 문화도 미래의 국토도 염두에 두지 않은 졸속과 천박이 자명했으나, 저항할 수 없는 완력이었다.


2008년, 역사 이래 최대의 국토 절단 내기가 시작되었으며, 힘없는 국민은 토건족을 욕하거나 원망하거나, 죽어가는 강물에게 자주 속죄했다. 침묵하는 자연의 분노가 부메랑처럼 들이닥칠 예감에 두렵기도 했다. 


그 절망의 4년 동안 지율 스님은 영화 <모래가 흐르는 江>을 만들었다. 4대강 사업 착공 후부터 낙동강 공사장을 따라 걸으며 백 미터마다 멈추어 촬영한 영상을 모은 것이다. 시사회 후 지율스님에게 한 기자가 질문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4대강 사업을 자신의 가장 큰 업적이라고 했습니다. 그분에게 분노하지 않으셨습니까?”


“4대강 사업은 어느 한 사람의 결정이라기보다 우리 사회가 허락한 일입니다. 분노나 원망 같은 것은 내려놓고 강의 모습을 따라갔습니다. 그분에 대한 분노는, 제가 감당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가 기록한 낱낱의 풍경이 시처럼 아프고 아름다웠다. 


물과 모래가 함께 흘러가는 투명 속에서 아이들이 꽃잎처럼, 버들치처럼 뛰어놀았다. 굴착기가 퍽, 퍽 찍어내는 강의 속살에서 피가 흐르지는 않았다. 아궁이에 든 불을 추스르는 수몰지구 노인도 깊게 탄식할 뿐 울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래 강이 재앙 속으로 주저앉는 모습, 400년 이상 거기 깃들어 살던 숲과 학교와 사람들 모습이 흔들리는 캠코더를 통해 막막하게 재현될 뿐이었다. 


강들은 이제 원형을 잃었고, 실핏줄 같은 지천들은 깊어진 본류를 향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중이다. 그 참담을 밟고 지천 상류에는 댐이 건설되고 있다. 대한민국 어느 토건 현장에서나 발견되는 ㅅ물산 로고가 내성천 파괴 현장에서도 여전히 위용을 자랑했다. 그들이 외치는 경구의 치밀함이라니! “1%의 가능성만 있어도 도전하라.”


내성천 공사가 이미 엄청나게 진척된 듯 보이지만 실제 공사 진행률은 5%에 불과하다. 공사를 멈추고 기다리면 강은 스스로 제 몸을 회복한다. 100% 진실 앞에, 기다리지 않을 이유가 없다.


삶의 터를 잃은 수달, 삵, 먹황새, 원앙, 흰수마자들에게 그 강을 돌려주어야 우리가 살 수 있다. 하늘에 별이 있는가? 강에는 모래가 있다. 내성천은 아이들에게 돌려주어야 할 우주다. 강물에 종아리를 담그고 발가락 사이 간질이는 모래밭을 걸어본 아이는 스스로 땅을 안다. 


“우리가 머 아나. 나가라면 나가야재. 지금은 어른 대접이 없는 시대라….” 


흰 신작로를 걸어온 아들이 들어설 대문에 영산홍 심어둔 노인을 그 집에서 쫓아낼 당위성을 4대강 사업은 갖지 못했다. 이 나라에 국책사업보다 소중하지 않게 태어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모성의 시대를 약속했던 현직 대통령이 4대강 공사를 완전히 중단시키면 참 좋겠다. 강의 찢긴 몸을 끌어안고 국민들과 함께 강의 부활을 기다리는 대통령의 모습은 피에타에 버금가는 장엄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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