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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김여정 담화 이후 남북관계는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다. 남북 정상이 도보다리를 걷고 이웃집 놀러가듯 만남을 가졌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4·27 판문점선언의 옥동자로 불리던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되고 9·19 평양공동선언의 최대 성과로 자랑하던 군사합의서도 휴지조각이 될 위기에 처해 있다. 김정은 시대에는 남북관계가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으나 북한의 돌출행동으로 인한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은 오히려 더 심해졌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김여정의 말폭탄으로 시작된 최근 북한의 주장에서는 몇 가지 일관성이 읽힌다. 탈북자 단체의 전단 살포를 빌미로 하고 있지만 저들의 입장은 크게 세 가지로 집약된다.        

첫째는 우리가 합의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우리가 미국 눈치를 보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는 우리를 적으로 규정하고 상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모두 잘못된 생각이다.

먼저, 합의 위반 문제이다. 북한은 전단 살포를 정부가 묵인했다고 주장하지만 우리 사회 특성상 민간의 행위를 정부가 통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며, 이를 막기 위한 그간의 노력은 북한도 잘 알고 있다. 무엇보다도 합의 위반 여부는 합의 당사자 간 회담을 통해 시시비비를 가려야 맞는 것이지 모든 소통 채널을 차단하고 더 큰 합의 위반(군사행동)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은 합의 준수 의지가 애초부터 없다는 것을 방증할 뿐이다.

다음은 우리가 미국 눈치만 보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남북관계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의 구조적인 틀을 벗어나기 어렵고 비핵화 프로세스가 진행될 때 ‘우리민족끼리’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다는 것은 북한도 이해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미국과 비핵화 협상에 나선 것이 아닌가. 무엇보다 북한은 제재 범위 내에서 남북 간 할 수 있는 협력을 번번이 거절했다. 코로나19 계기 방역협력이나 개별관광 추진 등 우리의 노력을 묵살하거나 외면했다. 남북관계를 북·미관계에 종속시키고 있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북한이다.

마지막으로 대남업무를 ‘대적사업’으로 바꾸고 우리와 대화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동북아 안보 현실에서 북한이 우리를 밟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1990년대 엄혹했던 고난의 행군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6·15공동선언이 있었기 때문이고, 2018년 국면에서 김정은이 국제무대에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우리의 중재노력 때문이었다. 특히, 중간선거 때문에 ‘내 코가 석 자’인 트럼프에게 통미봉남(通美封南) 전술이 먹혀들 리 없다는 것은 김정은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말 당 중앙위 5차 전원회의에서 비핵화 협상 장기화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제재 국면을 자력으로 극복해 나가겠다는 ‘정면돌파전’을 선언했지만, 코로나19라는 복병(伏兵)을 만나 큰 어려움에 봉착했다. 이러한 난관을 돌파하기 위한 출구로 대남 압박을 선택해 남측을 굴복시키고 트럼프를 움직여 보겠다는 계산을 한 것 같다. 크게 잘못된 셈법이다. 우리 정부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트럼프도 남북 간 치고받기에는 관심이 없다.  

김정은 위원장이 현재의 경제난을 극복하고 2018년 4월 야심차게 선언한 이른바 ‘사회주의경제 건설 총력 노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서울과 협력해 함께 워싱턴을 설득하는 전략으로 방향을 다시 잡아야 한다.

<김호홍 |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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