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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경남경마장이 2005년 개장한 이래 무려 7명의 말 관리사, 기수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해 12월 문중원 기수 유족들은 고인의 장례를 미루는 결단 끝에 서울로 상경하였고 동시에 사망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및 제도 개선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가 결성됐다. 이후 기자회견 개최 및 노사협상, 집회, 오체투지, 추모문화제 등을 통해 사태 해결을 촉구해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문중원 기수 유족들에게 이번 설 연휴는 그 어느 때보다 혹독한 시간이 되었다.

청와대 행진 한국마사회의 부조리한 운영을 비판하며 극단적 선택을 한 문중원 기수의 유족과 시민대책위가 13일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청와대로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마사회는 기수노조와 노사협상을 진행 중이다. 지난 22일엔 보도자료를 통해 문중원 기수가 유서에서 제기한 경마 승부조작, 조교사 개업비리 의혹 등의 문제와 관련,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상은 허울에 가깝다. 시민대책위원회는 설 당일에도 “마사회는 진상규명 등 교섭에 제대로 응하라”는 기자회견을 열어야 했다. 마사회가 반복된 노동자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8번째 죽음은 막아야 한다는 마음이 깊어져간다.

현 사태의 책임자이자 조사 대상인 마사회는 최근 셀프조사 실시를 빌미로 피해 집단인 기수들을 압박하기에 이르렀다. 시작은 마사회가 자체적으로 제정·시행하는 경마시행규정에 근거한 기수들 개개인의 통신기록 및 금융기관 거래내역 제출 요구였다. 지난 20일에는 조교사의 부당한 지시 사실관계 확인 명목으로 기수들에게 출석을 요구하고 불응 시 관련 규정에 따라 제재 처분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아 출석요구통지서를 보냈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마사회법은 마사회의 권한만 있고 의무는 없어 헌법상 법률유보 원칙, 포괄위임금지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 위헌적 요소를 차치하더라도, 개인의 내밀한 정보 제출을 요구하는 등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제약하는 내용의 경우 되도록 좁고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 한국마사회법, 시행령 및 경마시행규정에 근거한 위와 같은 행위는 위법·부당한 것이다.

심지어 검경 수사에서조차 피해자를 포함한 참고인이 소환에 불응한다고 해서 강제수사로 전환할 법적 근거는 없다. 문중원 기수 유족과 시민대책위원회가 책임자 처벌을 말할 때면 아직 정확히 밝혀진 게 없다는 등 미온적 태도로 일관해온 마사회가 기수들에게는 출석요구에 불응할 경우 징계할 수 있다고 일방 통보한 것이다. 마사회의 셀프조사, 그에 따른 자료제출 및 출석요구통지가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소불위(無所不爲)는 사전적으로 ‘하지 못하는 것이 없음’이라는 의미이다. 마사회는 1993년을 기점으로 경마종사자와의 형식적 근로관계를 없애고 ‘개인마주제’로 전환하여 모든 위험을 외주화하였다. 공기업 정규직 평균 연봉 1위, 매출액 연간 7조8000억원 이상, 당기순이익 2200억원 이상, 국고보조금 110억원 이상. 마사회를 표상하는 숫자들이다. 사용자가 아닌 경마 시행 주체일 뿐이라던 마사회는 경마종사자들의 면허부터 임금 결정, 징계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인 권한을 행사하면서도 지난 15년 동안 부산경남경마장에서 벌어진 죽음은 수수방관해왔다. 달리는 말 위에서 채찍 한번 놓치면 마사회에 벌금을 납부해야 했던, 조교사의 부당한 지시에 거부할 방법이 없어 혼자 위험을 안고 내달려야 했던, 그리고 동료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미뤄진 경기에 보전출전하고 싶지 않았던 기수들에게 출석요구에 불응하면 제재 처분을 할 수 있다고 통지한 마사회에 되묻고 싶다. 마사회가 부르면 가야 하나요?

<조미연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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