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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새로운 것이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통해 일어난다 할지라도, 혹은 과거가 멸종하고 파괴된 자리에서 새로움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기실 그 새로움은 익숙한 것을 대신하지 않는다. 가령, 가솔린 엔진은 증기기관을 대신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1890년 즈음 벤츠와 다임러가 가솔린 엔진을 개발했을 때도 증기기관은 압도적으로 훌륭했다. 누구도 이에 대해 반론하지 않았다. 시장과 소비자도 그렇게 여겼고, 증기기관을 선택했다. 심지어는 벤츠와 다임러조차 증기기관차를 탔다.

이것은 당연하다. 증기기관과 증기자동차는 열효율이 좋고, 최고 속도가 빨랐으며, 소음과 진동도 적었다. 시장 점유율이 압도적이었고 산업 규모가 커 일자리도 많았다. 반면 당시 가솔린 엔진은 연속운전해서 12시간을 못 버텼고, 언덕을 오를 때면 뒤에서 밀어야만 했다. 최고 속도는 시속 16㎞를 넘지 못해 마차보다 느렸다. 또 연료로서 가솔린은 자주 불이 나거나 폭발했다. 소비자는 외면했다.

그러나 당시의 비밀을 털어놓자면, 내연기관 엔진은 비행기를 날리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다. 훗날의 여객선과 잠수함을 위해서, 우주여행을 위해서 태어났다. 철로 없이도 이동하려고, 그래서 철로를 벗어난 곳을 찾아가는 여행산업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도심의 비싼 땅값을 피해 외곽에 집을 짓고 시내로 출퇴근하기 위해서, 공장을 교외로 보내고 그 자리에 광장과 극장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컨베이어 벨트로 돌아가는 대량생산 시스템을 위해서, 대부분의 근로자를 중산층으로 만들기 위해서, 창업과 창직을 위해서였다. 가솔린 엔진이 태어난 이유 중 단 한 개도 증기기관이 밉거나, 대신하거나 없애려던 것이 아니었다.

태양광도 그렇다. 태양광이 화력발전과 원자력발전을 미워하거나 대신하기 위한 것이라고 여긴다면, 아니다. 태양광은 전선 없이도 문명을 비추기 위해 만들어졌다. 외진 곳의 가로등을 위해서, 태풍과 지진의 강력한 파괴를 극복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다. 심지어는 인공위성과 우주여행 비용을 값싸게 만들기 위해서 태어났다. 발전기와 전선 없이도 원하는 모든 것, 모든 이와 연결할 수 있기 위해서다. 미세먼지 없는 하늘을 위해서, 풍요로운 에너지 삶을 위해서다. 온실가스와의 전쟁을 끝내고, 에너지 민주주의를 제대로 이루고 동북아에 평화공동체가 구현된다면 이도 태양광이 부양한 결과일 것이다.

그런데 왜 이 땅의 태양광은 아직도 혼란 속에 있을까? 그것은 정부의 재생에너지 정책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농지와 임야는 막혀 있으며, 물과 건물도 녹록지 않다. 그런데 공공건물과 정부기관마저도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있으니 정부에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재생에너지 확대 의지가 진심인지를. 진정이라면 이제라도 기업과 시장에 그린 라이트를 켜줘야 한다. 유휴부지 활용 도시형 태양광은 그린 라이트로 제격이다.

특히 공공기관 태양광이 중요한 축이다. 국민생활과 밀접한 공공기관에 태양광 보급을 확산하면 국민 수용성을 향상시키고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이라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기업과 시장에 보여줄 수 있다. 우선 소방서, 경찰서, 우체국, 고속도로 등 공공건물 유휴부지부터 태양광 설치를 적극적으로 시작해야 하며, 나아가 지자체와 마트·백화점·주유소 등의 민간시설로도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

물론 이 정도로 에너지 전환의 앞길을 환하게 밝힐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제시한 청사진을 실제로 이룰 수 있다는 신호등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인구가 집중된 도심 시설에 설치하면 태양광의 상징성을 각인시키고 수용성을 향상시키는 효과도 높을 것이다. 공공기관 태양광 사업은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이라는 재생에너지 3020 정책 추진의 강력한 의지를 확인시키는 것이다.

<홍준희 가천대학교 에너지IT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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