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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친은 40년간 교편을 잡았다. 모친은 ‘유신독재’, ‘군사독재’ 같은 말을 싫어한다. “어머니는 그 시절 어떠셨느냐”는 아들의 은근한 시선을 몇번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한번은 그가 따졌다. “내가 독재에 부역이라도 했니?”

군사독재는 1~2년이 아니다. 박정희·전두환 시절만 해도 25년, 노태우 통치까지 합치면 30년이다. 그 시절 그 정권에 직·간접적으로 협조하지 않은 국민이 몇이나 있을까. 유신헌법에 대한 국민투표 찬성률은 91.5%였다. 일제시대는 더 길었다. 국권을 잃은 1910년부터 광복까지 무려 35년이 걸렸다. 외교권이 박탈된 을사늑약 전후부터 따지면 40년이 넘는다.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던 그 시절, 적극적인 친일파도 있었지만 많은 이들이 시대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조선인 90%가 창씨개명했다).

세계 제 2차대전 때 독일에 협조한 프랑스 비시정부는 기껏해야 4년에 불과했다. 프랑스는 전후 곧바로 나치 협력자들을 색출해 처단하기 시작한다. 짧은 기간 부역했다며 처형한 사람만 10만명이다. 우리는 달랐다. 몇 세대에 걸친 뒤틀린 역사 속에서 대부분의 국민이 일제에 머리를 숙였고 독재에 찬성했는데 누굴 처단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일제와 독재에 목숨 걸고 맞선 이들도 적지만 존재했다. ‘정의’는 이들 소수의 차지여야 마땅하지만, 다수의 국민이 뒤틀린 역사에 연루된 상황은 이를 쉽게 허용하지 않았다. 일제통치나 독재정권이 한국 근대화에 공헌했다는 주장이 계속 나오는 이유다.

때마침 박근혜 대통령이 등장했다. 대통령의 부친은 일제 만주군 장교를 지내고 훗날 독재정권을 이끈 인물이다. 부친 서거 후 대통령은 은둔해 박제가 됐다. 박 대통령은 경험과 비전을 가진 새 시대 정치인이라기보다 ‘그 시절’의 상징에 가깝다.


박근혜 대통령이 11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11차 사회보장위원회 회의가 시작하기 앞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_청와대사진기자단


박 대통령 당선은 자칫 부역자로까지 몰리게 된 적잖은 이들과, 밥상머리 교육·각종 혈연 학연 지연 등으로 얽혀 영향을 주고받은 수많은 이들, 또 이들이 구축해온 각종 구조들이 모종의 ‘역사적 재평가’를 원했던 결과다. 그래서 대통령은 ‘콘크리트 지지’를 받는다. 그가 노골적으로 역사교과서에 손을 대겠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과거를 손보면 쉽사리 고통에서 벗어난다. 태어나보니 일본인이었고, 원치 않게 청춘의 한복판을 독재정권과 함께 보냈다. 나름 열심히 살아왔는데 갑자기 바뀐 세상 저편에서 날아오는 아들·딸의 질문. “아버지·어머니는 그때 안녕하셨나요?” 대통령의 독주와 그에 대한 콘크리트 지지는 이 질문에 대한 무언의 답변이자 시위인 셈이다.

그러나 이 시위는 사회 진보엔 도움이 되지 못한다. 과거가 옳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과거 방식대로 하려 한다. 경제 정책은 늘 대기업 위주의 성장정책이어야 한다. 다 죽은 ‘낙수효과’를 아직도 유행가처럼 부르는 사람들이다. 내수부양을 외치면서도 노조는 막고 직원 월급은 줄이자고 한다. 어딘가 큰 조직에 속해 있어야 안정적이며 자유롭게 활동하려는 꿈은 ‘낙오’다. 경쟁할 준비만 해야 하고, 토 달면 혼난다.

일제와 군사독재는 역동 대신 복종을 요구했다. 그 방향으로의 회귀는 창조적 도약의 최대 적이다. 창조경제를 말로 외치긴 쉽지만, 회귀적 발상의 주역들은 필연적으로 ‘창조경제 3개년 계획’ 같은 허무개그를 하게 된다. ‘헬조선(가망 없는 한국사회를 뜻하는 인터넷 용어)’의 뿌리를 봐야 탈출구를 찾는다.

우리는 중대한 선택 앞에 서 있다. 판단은 사회 전체의 몫이지만, 진통제는 한 시대의 고통을 잠시 감춰줄 뿐 암 덩어리를 제거하지 못한다는 걸 다 안다. 아프고 두렵더라도 결국 ‘정의’와 ‘미래’를 향할 것이다. 이런 선택은 빠를수록 좋다.


홍재원 | 사회부 jwh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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