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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맥주를 기어이 구독 리스트에 올리고 말았다. 술 사랑이 가장 큰 이유이긴 했지만, 그 구독 사이트는 술 말고도 다른 것으로 마음을 움직였다. 하얀 고래 한 마리다. 이 업체는 지구온난화로 서식지가 파괴되면서 멸종위기에 근접한 벨루가 고래 한 마리를 세계자연기금으로부터 입양했다고 한다. 물론 진짜 입양은 아니다. 멸종위기 근접종 또는 멸종위기종의 개체 유지 및 보호 활동에 후원금을 내는 방식이다. 한주 전쯤 맥주와 함께 벨루가 한 마리가 활짝 웃는 모양의 스티커가 배송돼 왔다. ‘고래야, 미안해!’

아이를 키우면서 겁이 많아졌다. 우리 아이가 살아가야 할 환경이 더 나빠질 일만 남은 것인지 두렵다. 거북이가 빨대의 바다를 헤엄치고, 북극곰이 삶의 터전을 잃는 곳. 미세먼지를 실시간으로 체크해야 하고 마스크가 필수품이 된 곳. 그런 지구에서 아이들이 살아가야 한다는 게 화가 난다. ‘얘들아, 미안해!’

두렵다면, 미안하다면 바꿔야 한다. 많은 이들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지난달 25일 서울 홍대 일대에선 ‘플라스틱 컵 어택’이 열렸다. 온라인 커뮤니티 ‘쓰레기덕질’이 중심이 된 행사로 홍대 인근에 버려진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줍고 이를 해당 매장에 돌려주는 환경활동이다. 지난해 전 세계적 운동이 된 ‘플라스틱 어택’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영국, 벨기에, 프랑스 등에선 쇼핑을 하고 나서 과대포장된 비닐, 플라스틱 포장지를 해당 매장 카트에 쌓아두는 방식으로 ‘어택’이 이뤄진다. 같은 날 한강에선 플로깅(plogging) 행사도 개최됐다. 플로깅이란 영어 조깅(Jogging)과 줍다라는 뜻의 스웨덴어 ‘플로카 업(Plokka Upp)’의 합성어로, 달리면서 쓰레기를 줍는 행동을 말한다. ‘나와 지구의 건강을 동시에 지킨다’는 주최 측의 슬로건이 인상적이다. 그보다 앞서 ‘전지적 바다거북이 시점’이라는 행사에선 참가자가 ‘거북이’가 되어 빨대로 가득 찬 바다를 헤엄쳐보는 체험행사도 열렸다. 청년 비영리 단체 ‘통감’은 이 행사를 시작으로 매월 11일엔 빨대를 사용하지 말자는 플라스틱 빨대 퇴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고 한다.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4월 14일(현지시간) 스톡홀름의 한 기차역 플랫폼에서‘기후를 위한 학교 파업’이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고 서 있다. 그레타 툰베리 페이스북 캡처

쓰레기 덕후들과 플로거들, 청년 활동가들이 유난스러운 것 같다고, ‘프로불편러’ 아니냐고 느낄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제 프로불편러가 되어야만 지속 가능한 지구를 만들 수 있다. 비닐봉지 대신 플라스틱 용기를 들고 정육점이나 김밥집에 가보기, 텀블러에 커피 담아보기, 물티슈가 아니라 손수건 사용해보기… 당장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막상 실천하려고 하면 쉽지 않은 항목들이다. 텀블러를 깜빡해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커피를 사서 나온 경험, 장바구니를 챙기지 못해 종량제 쓰레기봉투를 사본 적이 있을 거다.

기후변화 대책을 촉구하는 등교 거부 운동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스웨덴의 16세 그레타 툰베리는 지난해 11월 공개된 TED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2078년에 저는 75번째 생일을 축하하게 될 거예요. 자녀나 손주가 있다면 함께 생일을 보내겠지요. 아마 2018년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에 대해 묻겠지요. 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는데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냐고요. (중략) 우리가 지금 당장 한 일들 또는 하지 않은 일들은 저와 제 세대가 미래에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제 점점 불편해지려고 한다.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가능하면 텀블러를 들고 다닌다. 에코백과 장바구니를 챙기고, 공정무역 상품에 관심이 간다. 빨대를 다회용으로 바꿨고, 다소 비용이 들더라도 친환경적 마인드를 갖고 있거나 환경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기업의 제품에 손이 간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행동은 힘이 세다. 툰베리는 말한다. “우리에게는 희망이 필요해요. 하지만 희망보다 필요한 건 행동입니다. 행동하기 시작하면 희망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이지선 뉴콘텐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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