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도시에 살면 사람이 참 유능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자동차는 신발이 된 지 오래고 대중교통도 때론 막힐 뿐이지 어디든 갈 수 있다고 믿는다. 스마트폰으로 무엇이든 살 수 있고 하루이틀이면 원하는 것이 배달되는 환경에서 재난은 영화에서나 스릴을 높여줄 장치에 불과했다. 더위나 추위가 좀 별스러웠지만 에어컨과 난방시설로 쾌적함을 더해줄 뿐이었다. 특히나 사계절로 단련된 나라에 살다보니 100년 만의 폭염, 1000년 만의 폭우는 해외토픽쯤으로 지나쳤다. 그러나 기후변화는 지구 차원의 변화라 누구도 비켜날 수 없다는 걸 여실히 체감하였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사는 동네가 80년 만의 폭우로 완전히 마비되었다. 그날 하필이면 서울 강남역 근처에 모임이 있어 뉴스에 나오는 장면들을 목격하였고, 평소 시간의 10배쯤 걸려 집에 도착하였다. 그래도 이건 좀 나은 편이다. 세종시에서 출퇴근하는 우리 직원은 폭우 전날 아침 집을 나선 후 아직까지 집에 가는 길이 물에 잠겨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집 안에 갇혀 목숨을 잃은 비극에 비하랴마는 도시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어 환경운동가로서 자괴감이 든다.

유엔 산하에 기후변화와 관련한 위험을 평가하고 대책을 만들기 위한 협의체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이 있다. 회원국을 대표하는 기후, 경제, 해양 등 각 분야 수천명의 전문가가 치열한 토론 끝에 보고서를 내왔다. 무려 1990년부터! 이에 발맞춰 1990년대 후반부터 우리나라 환경단체들도 기후변화의 문제점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기후변화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이 협의체에서 지난 4월에 발표한 제6차 보고서는 전문가 사이에서는 반향을 일으켰지만 널리 알려지진 않았다. 결론은 “기후변화의 원인이 인간의 활동이 명백하며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이 ‘1.5도’에 임박했다. 만일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이 1.5도에 도달하면 약 22억 인구가 5년마다 더 잦고 거센 폭염에 노출되고, 해수면이 상승하며 일부 생물종은 멸종하고 식량위기가 심화하고 새 전염병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만일 30개월 이내에, 즉 2025년부터 온실가스 배출량이 감소하기 시작하지 않으면 최악의 순간을 맞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뿐만 아니라 지난 6월 우리 기상청과 APEC 기후센터 등은 향후 탄소배출이 계속될 경우 21세기 후반(2081~2100년), 즉 우리 아들이 노년기를 보낼 때쯤이면 극한 강수량은 지금보다 급증할 것인데, 이는 지난 20년간 극한 강수량의 최고치를 몇 배나 상회할 것으로 예측했다. 과학자와 환경운동가들의 이런 경고는 다 어디로 스며든 것일까.

획기적으로 탄소배출량을 감축하지 못한다면 극한 기상현상이 지속되는 건 피하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경우 2021년 기준 91.8%인 4740만명이 도시에 거주하는데, 자동화된 도시가 물에 잠기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고도로 발달할수록 고도로 취약하기 때문이다.

<파친코>의 작가 이민진은 “진실은 반복해 말해야” 한다고 했다. 영화와는 비교할 수 없는 기후재난이 불길한 파열음을 보내고 있다. 비가 그치면 또 모두 잊을 것이다. 자괴감을 떨치고 더 큰 목소리로 외치련다, 이러다 다 죽어요!!!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녹색세상]최신 글 더 보기

'주제별 > 녹색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장의 한계’, 그 후 50년  (0) 2022.08.26
무엇이든 쓰레기 어택  (0) 2022.08.19
기후재난, 이러다 다 죽어요  (0) 2022.08.12
기후위기 서울의 자화상  (0) 2022.08.08
감춰진 ‘기후악당 도시’  (0) 2022.08.01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