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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없는 사람>을 쓴 커트 보네거트의 심정이 절절히 와 닿는 나날이다. 이라크와의 전쟁으로 전 국민을 벼랑 끝으로 몰았던 부시 행정부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썼다. 그들이 ‘백만장자를 억만장자로 만들고 억만장자들을 조만장자로 만드는 전쟁을 주도하고’ 있는 마당에 ‘언론과 통신, 교육까지 모두 그들 손에 들어가’ 있어서 ‘우리는 나치에게 점령당한 폴란드 국민보다 나을 게 없는 신세가 되었다’.

바로 우리 얘기다. 가장 답답한 건 사람들이 매일매일 접하는 뉴스 매체인 TV와 신문이 우리를 철저하게 기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권력에 도취된 미치광이 정치 집단이 철도와 의료를 대기업화하려고 온갖 꼼수를 다 부리고 있는데도 ‘조·중·동·매·종편’에서는 ‘장성택 3년상’ 치를 기세로 ‘남’의 집 얘기만 ‘열불나게’ 하고 있다. -이쯤에서 ‘저 종북 아닙니다’ 미리 도장을 받아두기 위해서 일부러 북한을 ‘남’이라 규정하는 바이다- 공영방송 KBS는 더 가관이다. 북한 얘기만 실컷 하다가 내일 날씨가 추워지니 블랙박스 켜고 주차하지 말란다. 그러고도 뻔뻔하게 수신료를 올리겠단다. 스마트폰과 PC 사용자들 몫까지 챙겨서. 환장할 노릇이다.

 

(경향DB)

그리하여 참다못한 사람들이 손으로 쓴 대자보를 붙이기 시작했고 그 대자보 열풍을 트위터로 지켜보며 더할 나위 없이 가슴이 뜨거워진 요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일개 대학생이 붙인 대자보 몇 장이 희망의 불씨가 되어 산불처럼 타오르고 있다. 결코 희망이 없지 않다! 나도 뭐라도 해야 한다. ‘뭐라도 되겠지’ 방관할 때가 아니다. 뭘 할 수 있을까? 지금 당장. 먼저 ‘부패한 정권은 모든 걸 민영화한다’고 했던 세계의 지성 노엄 촘스키에게 좀 더 배우고 내가 배운 걸 사람들과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라는 책을 뒤적였다. ‘언론이 도대체 왜 이러냐’고 묻고 싶을 때가 많았는데 거기에 이런 답이 있었다.

“내가 보기에 교육제도와 전문직 훈련 과정이라는 게 아주 정교한 여과장치입니다. 너무나 독립심이 강하거나, 스스로의 힘으로 생각하거나, 순종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솎아내지요. 언론은 ‘제도’를 무시하고 곤란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언론사 안에 있는 것을 커다란 역기능으로 보는 거지요.”

아, 알겠다. 국민들이 마땅히 알아야만 하는 권리를 무시할 만큼 언론이 망가진 건 결국 ‘밥그릇’ 문제였던 거다. 아무렴, 밥그릇은 소중하니까. 심지어 눈물 나게 숭고한 거라고 찬양하던 기자 출신의 유명 소설가도 있었다. 그분 때문에도 몇몇 언론인들이 나날이 용기백배 비겁해졌을 거라 추측한다. 이해한다. 동정한다.

그러다 문득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 생각이 났다. 원래는 MBC 기자였는데 정치권과 대기업의 비리를 지나치게 열정적으로 취재하는 바람에 해고당한 남자. 그러나 조용히 찌그러져 있지 않고 저 홀로 인터넷 뉴스포털 ‘고발뉴스’를 만들어 이 시대의 진정한 기자 정신을 보여주고 있는 용감한 남자. 갑자기 그의 밥그릇이 걱정됐다. 도대체 뭘 먹고 하시는지. 밥은 먹고 다니시는지. 찾아보니 고발뉴스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후원금으로 운영되는데 정기회원이 5000명 넘으면 이상호 기자도 월급을 받을 수 있다고 어떤 기사에 쓰여 있었다. 그걸 읽고 당장 고발뉴스 닷컴에 들어가 정기회원 등록하고 트위터에도 ‘이상호 기자님 우리 손으로 월급 줍시다’라는 글을 올렸다. ‘조세회피처 프로젝트’로 부활한 해직 언론인들의 매체 ‘뉴스타파’처럼 ‘고발뉴스’도 당신과 나의 가열찬 응원과 후원이 필요하다고.

그 다음 우리가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작은 것들의 신>으로 부커 상을 받은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가 같은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무수한 방법으로 시민 불복종 운동을 전개할 수 있다. 우리의 예술, 우리의 음악, 우리의 문학, 우리의 완강함, 우리의 기쁨, 우리의 명민함, 우리의 꾸밈 없는 활력을 바탕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들을 들려주어야 한다. 우리가 믿도록 세뇌 받고 있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말이다. … 다음의 사실을 잊지 마라. 우리는 많고 그들은 적다.

한참을 고민했다. 12월19일 촛불 시위에 참여할까? 나도 동네 노인정이나 슈퍼마켓 앞에 대자보를 붙일까? 그러다 아룬다티 로이의 윗글에 고무되어 인터넷에서 선별해낸 최신 뉴스에 내가 사랑하는 음악과 문학, 예술 속에 우리들의 이야기까지 담은 나만의 웹 매거진을 만들기 시작했다. 플립보드(Flipboard)라는 소셜 매거진 서비스를 이용하니 이틀 만에 무려 6가지 테마의 매거진을 만들 수 있었다. 놀라운 세상이다. 대자보라는 클래식한 시민 저항 운동에 트위터와 나만의 웹 매거진이라는 최신 무전기로 혁명도 이룰 수 있는 세상이 온 것이다. 돈과 권력을 쥔 자들이 하루가 멀다 않고 빌어먹을 짓을 하고 있다. 그들이 망쳐 놓은 이 세상을 구하는 일이 당신의 손끝에서부터 이루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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