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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지난달 19일 충북 충주 중앙경찰학교에서 열린 310기 졸업식에서 졸업생을 대표해 복무선서를 한 여성 경찰관에게 흉장(가슴표장)을 달아주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갤럽이 지난 2일 공개한 9월 첫 주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27%였다. 전주(8월 4주)와 같았지만, 국정수행 부정평가 이유 중에는 변화가 있었다. 8월 1~4주 조사에서 모두 1%에 머물렀던 ‘김건희 여사 행보’가 3%로 오른 것이다. 

시민이 김 여사에 대해 뜨악한 지점은 모두 다를 것이다. 누군가에겐 코바나컨텐츠 관련 업체가 관저 공사 계약을 따낸 문제, 누군가에겐 김 여사가 고가 장신구를 지인에게 빌린 일, 누군가에겐 김 여사 수사를 담당한 경찰관이 취임식에 초청된 사안일 수 있다. 또 다른 누군가에겐 ‘회원 유지’를 ‘member Yuji’로 표기한 논문, 누군가에겐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일 것이다. 

내겐 중앙경찰학교 졸업식이었다. 지난달 19일 중앙경찰학교 졸업식에 윤 대통령과 함께 참석한 김 여사는 여성 졸업생 대표에게 흉장(가슴표장)을 달아줬다. 모든 공무원의 최종 임명권자는 대통령이지, 대통령의 배우자가 아니다. 당일 행사 직전 중앙경찰학교가 낸 보도자료를 보면 “윤 대통령은 졸업생을 대표하여 복무선서를 한 ○○○(41세, 남) 순경과 ○○○(32세, 여) 순경에게 직접 가슴표장을 부착해줌으로써…”라는 대목이 나온다. 이 자료대로라면 김 여사의 흉장 수여는 원래 식순에 없던 게 갑자기 들어간 셈이다. 졸업식 후 김 여사는 윤 대통령과 별도의 여성 졸업생·가족 간담회까지 했다. 

돌아보면 알아차릴 기회는 많았다. ‘언터처블 김건희’ 말이다. 예고편 첫 번째. 지난해 12월 후보 배우자로서 허위 학력 의혹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했을 때다. 사과문 내용이 낯설었다. 그동안 접해온 정치인 및 가족들의 사과문과 전혀 달랐다. 김 여사의 사과문은 “몸이 약한 저를 걱정해 날씨가 추운데 따뜻하게 입어라 늘 전화를 잊지 않던” 남편 자랑과 신변 잡사로 일관했다. 선거캠프에서 문안에 손도 못 댄 게 분명해 보였다. 

예고편 두 번째. 지난 5월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에서 대통령 부부가 찍은 사진이 김 여사 팬클럽 ‘건희사랑’을 통해 공개됐을 때다. 대통령실에선 해당 사진을 외부에 제공한 주체는 “여사님일 것 같다”고 했다. 

예고편 세 번째. 지난 6월 봉하마을 방문이다. 당시 전직 코바나컨텐츠 임원이 동행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대통령실은 “여사와 가까운 사이고, 고향도 그쪽 비슷해서…”라고 설명했다.

김 여사를 둘러싼 논란에는 특징이 있다. 형태는 유사한데 스케일이 커지며 재연된다. ‘예고편 2’는 대통령 일정 노출로 변주됐다. 출입기자들에게도 공개되지 않은 윤 대통령의 대구 서문시장 방문 일정이 김 여사 팬클럽에 미리 흘러나갔다. ‘예고편 3’은 나토 방문 동행으로 확대 재생산됐다. 김 여사의 오랜 지인이자 이원모 인사비서관 부인인 신모씨가 민간인 신분으로 동행했다가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귀국한 사실이 드러났다.

논란이 다른 논란으로 덮인다는 점도 흥미롭다. ‘논문’은 ‘관저 공사’로, 관저 공사는 ‘장신구’로, 장신구는 ‘취임식 초청’으로 덮인다. 가장 중요한 특징은 ‘해명 없음’이다. 대통령실은  사고가 터지면 확인해보겠다고 하지만 그때뿐이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제 처는 (제가) 정치하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대통령 부인은 그냥 가족에 불과하다”(동아일보 인터뷰)고 했다. 제2부속실 폐지 공약도 배우자 활동을 최소화하려는 취지로 해석됐다. 착각이었다. 제2부속실은 배우자 활동을 ‘자유롭게’ 하려고 없앤 걸로 봐야 한다.

지난달 23일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 풍경은 징후적이다. 야당 의원들이 김 여사 관련 의혹을 파고들자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은 “지금 ‘우리 여사’가 뭘 잘못했는지 먼저 말씀해달라”고 맞받았다. 비서실 수장이 이 정도면, 다른 참모들은 ‘우리 여사’에 대해 입도 뻥끗 못할 게 분명하다.

그러니 ‘우리 여사’가 직접 말씀하시라. 코바나컨텐츠 관련 업체가 입찰공고 3시간 만에 수주에 성공하는 데 관여하지 않았는지, 수천만원대 장신구를 어떤 지인에게서 무슨 조건으로 빌렸는지, 취임식에 경찰관을 초청한 까닭은 뭔지 국민 앞에 설명하시라. 잘못이 있으면 사과하면 된다. ‘Yuji’ 논문은 철회하고 팬클럽은 해체하면 된다. 다만 주가조작 연루 의혹은 다른 사안이다. 국민에게 설명할 게 아니라 검찰 조사를 받을 일이다. 대통령 배우자의 일거수일투족에는 국민 세금이 들어간다. 김 여사는 침묵할 권리가 없다. 대한민국은 ‘김건희의 나라’가 아니다.

<김민아 논설실장 makim@kyunghyang.com>

 

 

연재 | 김민아 칼럼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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