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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어느 지구주의자의 시선>이라는 책을 펴낸 적이 있다. 몇 년 치 신문 칼럼들을 간추려 정리한 보잘것없는 단행본인데 출간되자마자 질문이 쏟아졌다. 지구주의자는 어떤 사람을 지칭하느냐는 것이다. 사실 지구주의자는 환경운동가들에게도 익숙한 용어가 아니다. 영어권에서는 세계화주의자를 말하는 경우도 있고, 드물게는 성장지상주의에 맞서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지구주의자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인간은 지구의 일부이며 지배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람, 그러므로 지구를 파괴하는 것은 곧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임을 자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구주의자가 될 수 있다. 이런 기준을 적용하면 자동차를 버리고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 자투리땅 텃밭에서 생명을 키워내는 도시 농부들, 옥상과 아파트 베란다에 햇빛발전소를 설치하는 시민들은 모두 지구주의자가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떨까. 그 또한 지구주의자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나무와 반려동물 사랑이 극진하고 들꽃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거의 전문가 수준이라는 세간의 얘기 때문만은 아니다. 문 대통령의 미세먼지 대책 발표와 4대강 정책감사 지시는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대통령 업무지시 세 번째와 여섯 번째를 환경문제가 차지한 것은, 야만의 시대가 가고 생태적 진실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4대강 6개 보 수문의 상시 개방을 시작한 1일 대구 달서구 강정고령보 위로 물이 넘쳐 흐르자 시민과 취재진 등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 강윤중 기자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앞날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수십년간 굳어온 낡은 에너지체제를 현대화하고 녹조로 뒤범벅이 된 강을 되살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모든 변화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비용이 든다. 강력한 저항도 감수해야 한다. <전환 함정을 경계하라>를 쓴 마르크 작서의 표현을 빌리면, 기득권 동맹 가담자들은 자신이 누려왔던 지위와 특권을 지키려는 엘리트들만이 아니다. 동맹에는 급격한 변화가 자신이 익숙한 세계를 뒤흔들까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포함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두려움이 과장되었음을 밝히고 전환의 열매를 국민들의 손에 쥐여주는 것이다. 안토니오 그람시는 옥중에서 이렇게 말했다. “위기란 바로 낡은 것이 죽어가고 있지만 새로운 것이 태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에 있다.” 여기에서 새로운 것이란 기득권 동맹이 해체되었을 때 빈자리를 채우게 될 ‘이로운 그 무엇’이다. 봄철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가동을 일시 중단하면 등장하게 될 새로운 것은 무엇인가. 그 답은 트럼프가 폐기한 오바마 정부의 청정전력계획 사례에서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재작년 ‘석탄과의 전쟁’을 선포한 오바마 정부는 공화당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다. 이때 오바마 정부가 제시했던 ‘새로운 것’은 재생에너지 비전과 천식 예방효과였다. 청정전력계획이 실현되면 2030년까지 풍력은 3배, 태양에너지는 20배 늘어나고 신규 일자리가 수십만개 창출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대기오염 탓에 발생하는 약 5000명의 조기사망과 9만명이 넘는 어린이의 천식을 예방한다는 분석 결과도 덧붙었다.

4대강 수문 개방과 물관리 일원화,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문제를 놓고 기득권 동맹의 저항이 가시화하고 있다. 늘 그랬듯이 앞장서는 이들은 개발 패러다임을 만들어 유포하고 그 과실을 취해왔던 전문가들이다. 하지만 실세들은 따로 있다. 그들은 중립을 가장한 채 과도한 일반화, 부풀리기, 절차에 대한 트집 등을 통해 국면을 끊임없이 왜곡하고 통제하려 한다.

문재인 정부가 기득권 동맹의 저항을 뚫고 생태적 전환을 밀고 나가려면 그들이 짜놓은 비용 프레임에 갇히지 말아야 한다. 전환이 정당성을 갖는 것은 사회적으로 비용보다는 편익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공약 추진의 타당성을 둘러싼 논쟁은 국민들이 누리게 될 편익 중심으로 다시 짜여야 한다.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시민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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