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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 원전이 지진에 안전한가를 둘러싼 공방이 다시 벌어지고 있다. 발단은 한국수력원자력이 월성 원전의 압력관을 교체하지 않기로 한 결정이었다. 한수원은 월성 원전의 지진 안전성은 압력관을 교체하지 않고도 충분히 확보된 상태로, 가장 오래된 1호기의 경우에도 최대 지반가속도 0.3g까지 견딜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환경연합은 압력관이 교체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반가속도가 0.2g에 달하는 지진이 일어나면 위험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수원에서는 지반가속도 0.2g는 규모 6.5, 0.3g는 규모 7.0의 지진에 상응하기 때문에, 월성 원전은 7.0의 지진이 일어나도 안전하다고 말한다.

한수원과 환경연합은 각각 합리적으로 보이는 근거도 제시한다. 한수원은 확률론적 접근을 통해서 월성 원전 1호기는 지반가속도 0.3g의 지진이 일어날 때 파괴될 확률이 5% 미만이라는 결과를 얻었다고 말한다. 환경연합은 월성 원전을 수출한 캐나다의 자료를 제시하며 압력관은 지반가속도 0.2g까지 견딜 수 있을 뿐이고, 역사적 지진 기록을 분석하면 경주 인근에서 규모 7.0 이상의 지진도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수원과 환경연합의 주장에서 중요한 쟁점은 규모 7.0의 지진이 일어날 수 있는가이다. 한수원은 가능성이 없다고 말한다. 반면 환경연합은 그 이상도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것은 규모 7.0의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언제까지 없다는 것이고, 일어난다면 언제 일어날 수 있느냐이다. 100년의 기간을 설정하면 그런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가 된다. 그러나 100만년 이상의 기간을 설정하면 거의 100% 일어난다로 바뀐다. 이 기간을 1만년으로 하면 가능성이 상당히 있다가 될 것이다.

경북 경주 인근에서 규모 4.5의 지진이 발생한 다음날인 9월 20일 제16호 태풍 말라카스의 영향으로 경남 부산 기장군 고리원자력발전소 앞바다에 높은 파도가 몰아치고 있다. 연합뉴스

이 기간을 재현주기라고 하는데, 한수원은 이 주기를 대체로 1만년으로 설정한다. 규모 7.0 정도의 큰 지진이 1만년에 한번 정도 일어난다고 보는 것이다. 캐나다나 미국에서도 지진에 대한 원전의 안전을 검토할 때 이 정도의 기간을 설정한다. 반면에 독일이나 스위스는 1만년을 짧다고 보고, 10만년까지 늘려 잡기도 한다.

재현주기를 결정할 때 고려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예상되는 피해의 규모와 시민들의 위험 수용성이다. 피해 규모가 아주 작으면 이 기간이 짧아질 수 있다. 시민들 상당수가 원전 폭발사고가 수십년에 한번쯤 일어나도 괜찮다고 생각해도 재현주기를 짧게 잡을 수 있다. 반면에 피해 규모가 크고 안전의식이 높으면 재현주기는 길어진다. 독일이나 스위스의 경우 원전이 들어선 지역은 미국이나 캐나다보다 인구밀도가 훨씬 높다. 안전의식도 더 높다. 재현주기가 길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원전 지역의 인구밀도나 산업집적도는 독일이나 스위스가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높다. 재현주기도 당연히 독일의 10만년 또는 그 이상의 수준으로 높아져야 한다. 재현주기를 10만년으로 설정하면 규모 7.0 이상 지진의 발생 가능성은 상당히 높아진다. 대형 원전사고 가능성도 크게 높아진다. 그런데 한수원은 1만년을 고수하고, 한국의 원전은 지진에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지난 9월 경주 지진이 일어났을 때 한수원을 방문한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은 원전은 “지진·폭격에도 절대 폭발하지 않는다”고 확신에 찬 발언을 했다. 아마 한수원이 그렇게 설명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수원의 계산방법을 따르더라도 앞으로 수십년간 폭발이 일어날 가능성이 낮을 뿐, 절대 폭발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한수원이 정치인들 앞에서 한국의 원전은 지진이 일어나도 전혀 문제없다고 설명한다면, 이는 소수의 자기편은 설득할지 모르지만 대다수 국민을 설득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신뢰를 더 떨어뜨리고 분노를 돋울 뿐이다. 마치 “한순간도 저의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작은 사심도 품지 않고 살아왔습니다”라는 말과 같이.

이필렬 방송대 문화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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