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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라면 먼저 보수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스님들은 앞서 나가지 않는다. 스마트폰 같은 신문물도 사용하지만 먼저 받아들이는 경우는 드물다. 사회가 움직이면 조금씩 따라간다. 급변하는 사회가 과속으로 사고를 내지 않도록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것 같기도 하다. 감사한 일이다.

이런 측면에서 대한불교조계종 스님들이 종무원 노조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이해가 갔다. 내부적으로 해결하면 될 문제에 검찰이나 경찰 같은 외부의 힘을 동원하려는 것이 좋지 않게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5주 전에는 ‘더 쿨한 스님을 보고 싶다’는 칼럼을 쓰기도 했다. 원래 이해심도 많고, 약자를 보호하는 데 관심도 많은 스님들이 더 넓은 마음으로 노조원들을 대해달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최근 조계종이 종무원 노조 간부들을 징계하는 것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조계종 총무원은 노조에 대한 전근대적인 인식은 그대로인데, 징계하는 방식은 그 어떤 기관보다 ‘세련’됐고 절차는 신속했다. 지난 4월에 한 번 놀랐고, 지난달에 또 놀랐다. ‘이렇게 해도 되나? 아니, 법적으로 가능하긴 한 건가?’란 말이 절로 나왔다.

조계종 인사위원회는 지난달 9일 심원섭 지부장과 심주완 사무국장, 박정규 홍보부장 등 노조 집행부 3명에게 지난달 15일부터 ‘자택 대기발령’을 내렸다. 이들은 징계위원회를 앞두고 이미 대기발령을 받아 현업에서 배제된 상태였지만 ‘집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조건을 추가했다.

앞서 조계종 노조 집행부 3명은 지난 4월10일부터 지난달 15일까지 강원도 낙산사로 대기발령을 받아 떠났다 서울로 돌아오기도 했다. 이들은 모두 서울에 있는 조계종 총무원으로 출퇴근을 하던 사람들이다. 집과 가족 모두 서울에 있다. 조계종 종단은 이들에게 ‘산불피해 지원’이라는 명분을 주고 강원도로 보냈다.  

조계종 인사위원회는 징계위원회를 거쳐 지난달 24일 심원섭 지부장과 심주완 사무국장에게 징계를 내렸다. 심 지부장은 해고 통보를 받았고, 심 사무국장은 정직 2개월 징계를 받았다. 부친상을 당해 지난달 17일 열린 징계위원회에 출석하지 못했던 박정규 홍보부장은 지난달 27일 별도로 열린 징계위원회를 거쳐 지난 3일 정직 1개월이 확정됐다. 

조계종 인사위원회는 노조가 ‘종단 사업에 부정 내지 비리가 있는 것이 사실인 것처럼 검찰 고발과 기자회견을 해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을 징계 사유로 들었다. 그러나 조계종 인사위원회가 지키려는 것이 종단의 명예뿐은 아닌 듯하다. 노조의 전언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노조 간부들이 조계종 총무원이 있는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관 앞에서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자 총무원의 한 간부 스님은 “아비어미를 고소한 것과 같다”고 말했다. 노조가 지난 4월4일 자승 전 총무원장을 검찰에 고발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자승 전 원장은 재임 시절 승려노후기금을 위한 생수 판매 사업을 하면서 5억원 이상을 특정인에게 빼돌려 종단과 사찰에 손해를 입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노조는 징계에 불복해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 역시 노동법에 밝은 변호사를 수소문해 맞대응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쯤되면 누가 더 종단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는 것인지 헷갈린다. 내부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더 크게 만든 것이 누구인지도 알쏭달쏭하다. 

이제는 조계종 총무원이 그토록 바라는 부처님법이 아니라 사회법에 따라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국의 사회법은 ‘부모를 고소했다’는 이유로 자식을 처벌하지 않는다. 기관의 전직 수장을 비리혐의로 고발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하지도 않는다. 사회법뿐만 아니라 부처님의 마음 역시 그러할 것이라 생각한다.

<홍진수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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