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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일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구에 도착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텔레비전에서 그를 보는 일이 편치 않아 짐짓 딴청을 피우고 있는데 귀가 번쩍 뜨이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렸다. “고향에 온 느낌입니다.” 포토라인에 선 윤석열의 소회다. 아니나 다를까 온갖 미디어에 불이 났다. 윤석열이 왜 대구를 방문했는가. 대구를 고향이라고 느낀다는 그의 말은 무슨 뜻인가. 결론적으로 그는 정치를 하기 위한 준비로 보수의 성지 순례를 왔다는 얘기다. 나로서는 윤석열이 정치를 하건 말건 다툴 생각이 없다. 그런데 그가 보수의 성지 순례로 대구를 방문했다는 대목은 신경에 거슬린다. 그런 걸 염두에 두고 대구를 찾아왔다는 윤석열의 속내가 마뜩지 않다.
대구는 보수의 성지가 아니다. 어떤 학자들은 ‘대구의 정체성은 보수’라고 정의하면서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라는 자연환경적 요인, 자소작농 중심이라는 사회경제적 요인, 성향이라는 기질적 요인 등으로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모두 근거가 없는 구조적 결정론이다. 대구의 정체성은 하나가 아니며 불변도 아니다. 그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해방 후부터 박정희가 군부쿠데타로 등장하기 전까지 대구는 혁명의 도시로 불렸다. 미군정의 억압적 통치에 저항하여 일어난 1946년 10월항쟁은 그해 가을 전국의 들판을 추수봉기의 깃발로 덮었는데, 그 민중항쟁을 시작한 도시가 대구였다. 이 항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미군의 점령정책이 바뀌었고 냉전체제가 조기화하였다. 그럴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최근 대구에서는 제주 4·3처럼 이 일을 제대로 조명하자는 움직임도 있다.
1956년 대통령 선거도 대구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하겠다. 다 아는 바와 같이 이 선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민주당 후보가 갑자기 사망했기 때문에 경쟁은 자유당 이승만과 진보당 조봉암의 대결이었다. 승부는 싱거웠다. 전국적으로 이승만이 70%, 조봉암이 30% 득표를 했다. 문제는 대구였다. 대구지역에서는 거꾸로 이승만이 30%, 조봉암이 70%를 받았던 것이다. 이승만은 화를 참지 못해 대구를 ‘모스크바’라고 비난하였다.
이승만에 의해 ‘모스크바’로 불렸던 대구는 1960년 4월혁명이 출발한 곳이기도 하다. 그해 2월28일 대구의 고등학생들이 시위를 일으켰다. 이는 이승만 정권에 대한 첫 저항운동이었다. 시위의 규모, 지속시간, 치열함은 소박한 것이었으나 선도적 결단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 이를 시작으로 저항운동은 북쪽으로 올라가 4월에 서울에서 대학생들에 의해 절정을 이루었던 것이다. 1980년 5월 광주가 한국 민주주의의 십자가라고 한다.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희생과 부활의 뜻을 담고 있다. 이에 비견한다면 1960년 2월 대구는 한국 민주주의의 횃불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선도적 역할을 상징하는 것이다. 분단, 전쟁, 독재의 억압에서 모두 체념적 순종에 빠져있을 때 처음으로 일어나 4월혁명의 문을 열었던 도시가 대구이다.
혁명의 도시 대구가 박정희가 쿠데타로 등장하여 장기집권을 하는 동안 점점 군부권위주의의 지지기반으로 변화했다. 대구는 지역연고를 통하여 군부권위주의 세력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자신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했다. 이 지역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신화의 세계에 있는 지도자다. 그의 신탁은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로 이어졌다.
민주화 이후 대구는 지역주의에 포획되어 갔다. 지역주의는 처음 감정의 동원으로 만들어졌다. 특정 지역에 대한 배제를 통해 자기 지역의 결집을 도모하는 방식이었다. 그것이 계속되는 가운데 대구는 보수정당에 대한 정당일체감을 갖게 되었고 결국에는 그 정당이 가지고 있는 가치와 이념까지 내면화하기에 이르렀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대구 지역사회의 정치행태는 이런 역사적·구조적 성격을 띠고 있다.
‘대구의 정체성은 보수다’라는 말은 온당하지 않다. 대구는 혁명의 도시였던 때도 있었고 지금처럼 보수의 도시로 변화한 것도 사실이다. 대구의 정체성은 혼종적이고 복합적이다. 그리고 유동적이다. 이 혼종성, 복합성, 유동성이야말로 지역발전의 가장 중요한 힘이다. 지난 지방선거 당시 대구 구·군 기초의회 의원의 절반 정도를 더불어민주당이 차지했다. 대구광역시 의회에서는 30명 가운데 5명이 민주당 의원이다. 정치적 다양성의 싹이 트고 있다. 다양성은 도시의 역동성으로 이어질 것이고 시민들에게 참여의 효능감을 가지게 할 것이다. 그러니 보수의 성지 순례 따위는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태일 전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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