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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성공 경험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오히려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다. 높은 감염률과 낮은 치사율로 바이러스의 특성이 바뀌었지만, 코로나19 초기 대응에 성공적이었던 K방역을 통해 형성된 우리의 사고방식과 의료시스템이 이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고, 정부정책도 갈팡질팡하고 있다.

의료 인력 공백을 우려한 정부는 코로나19 확진 후 3일이 지난 무증상 의사의 진료는 허용하면서도, 진료받는 환자에 대해서는 엄격한 기준을 유지하고 있다. 위양성이나 위음성의 위험 평가도 바이러스 특성에 따라 바뀌어야 하는데, PCR 검사 결과가 아니면 못 믿는다는 경직된 사고로 코로나19 검사 역량에 과부하를 자초하고 있다. 결국 과부하를 감당 못하면 대안을 제시할 것인데, 이는 정책 불신만 더 초래하게 된다. 과학에 기초한 정부의 정책 기조 변경과 이를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설명하는 노력 없이는, 초기 K방역의 성공으로 인해 형성된 기존 사고방식을 바꿀 수 없고 결국 오미크론 변이 대응에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게 된다.

그런데 과거의 성공 경험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오히려 걸림돌이 되는 더 심각한 사례가 있다. 1961년 이후 한국 경제의 성장은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데, 이는 박정희 개발체제를 통해 이뤄졌다. 박정희 개발체제는 ‘정부 주도-재벌 중심’의 발전전략이라고 요약할 수 있으며, 이 전략의 성공은 다음 세 가지 요인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

먼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의 보증을 통해서 또는 정부가 직접 차관 형식으로 외국 자본을 도입해 국내 기업들에 자금을 배분하면서 시작된 관치금융은 제대로 발달되지 않은 자본시장을 보완하는 순기능을 가졌다. 또한 재벌의 수직계열화도 중간재 시장의 미발달을 보완하는 역할을 했다. 둘째, 군대식 명령과 통제라는 거버넌스도 모방을 통한 추격형 경제에서 효과적이었다. 추격형 발전전략에서는 가용한 자원을 신속하게 목표 산업에 투입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박정희 개발체제는 수출을 잘하고 많이 하는 기업에 특혜를 주는 보상체계를 구축했는데, 이는 매우 친경쟁적인 보상체계였다.

그러나 경제가 발전한 결과로 정부주도-재벌중심의 박정희 개발체제의 순기능은 없어지고 문제점은 심화되고 있다. 금융이나 중간재 시장의 발달로 정부의 개입과 재벌의 수직계열화의 순기능은 사라지고, 오히려 관치금융의 부작용과 재벌의 과도한 수직계열화 및 전속계약으로 인한 중간재 산업에서 혁신이 억제되는 부작용은 커지고 있다.

모방에 의한 성장은 한계에 도달했고 혁신에 의한 성장이 필요함에도, 여전히 정부가 유망 산업과 기업을 발굴 육성하고 기존 재벌 기업이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는 박정희 체제의 사고방식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혁신형 경제의 특성은 누가, 무엇이 성공할지 사전적으로 알 수 없다는 불확실성이고, 따라서 경제력 집중의 해소를 통해 도전 기업에 혁신할 기회와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 되어야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과거의 성공 경험에서 발생하는 이런 인식의 오류를 적극적으로 바로잡으려는 정치세력도 부재하다는 점이다. 오히려 재벌 총수일가를 중심으로 형성된 고위 관료·고위 법조인·보수 언론인의 기득권 카르텔이 이런 허위의식을 부추기고 있으며, 국민의힘 계열 정당뿐 아니라 민주당도 이에 부화뇌동하고 있다.

20대 대선은 한국 사회와 경제가 당면한 근본적 문제에 대한 치열한 논쟁과 정책 대결이 아니라,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싸운 조선시대 당파싸움처럼 네거티브와 약점 잡기에 몰두한 세몰이 과정이었을 뿐이다. 이 과정에서 서로 ‘내로남불’이라고 욕하고, 갈라치기를 비판하면서 정략적으로 갈라치기를 서슴지 않았다.

윤석열 당선자가 여소야대를 타개하기 위해 정계 개편과 사정에 나서고 또 이를 민주당의 보수화된 기득권이 정치적 생존을 위한 계기로 삼는다면, 대선 이후 우리 사회는 더욱 찢어지고 ‘그 나물에 그 밥’ 같은 비전과 정책을 가진 두 정파의 싸움으로 점철될 수 있다.

구체제의 모순을 뛰어넘어 정상적인 국가로 나아가자는 국민의 총화를 안고 시작한 문재인 정부가 근본적인 개혁은 등한시하고 지지율 관리와 제 식구 감싸기로 퇴행한 것이 높은 정권 교체 요구로 표출되었음을 민주당은 잊지 말아야 한다. 높은 정권 교체 요구에도 신승한 윤석열 당선자도 선거 기간에 보여준 극우적 정책과 측근 중심 정치를 고집하면, 곧 국민의 외면을 받게 됨을 깨달아야 한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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