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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중국 고대 주나라의 성왕이 어린 동생 숙우와의 사적인 자리에서 오동나무 잎으로 홀 모양을 만들어 주면서 “이것으로 너를 봉분하노라”라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홀은 왕이 제후를 세워 일정한 영토를 맡아 다스리게 할 때 주는 신표다. 숙우는 기뻐하며 국정을 총괄하던 숙부 주공에게 가서 말했다. 주공이 성왕에게 이 일을 묻자 성왕은 그냥 장난삼아 해본 말일 뿐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러자 주공은 정색을 하고 “왕은 장난스러운 말을 하지 않는 법입니다. 왕이 말을 하면 사관은 기록하고 악공은 노래하고 사대부는 찬미합니다”라고 말하고는 숙우를 제후로 봉하게 하였다.

<여씨춘추>에 실린 이야기다. 왕으로서 말을 신중하게 하도록 성왕을 경계하는 한편, 왕의 말이 지니는 절대권위를 세움으로써 통치 기강을 다지고자 한 주공의 지혜로 칭송되어 왔다. 그런데 훗날 당나라의 문인 유종원은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했다. 숙우를 봉분하는 것이 합당한 일이었다면 장난스러운 말로 인해서가 아니라 공식적인 절차로 이미 진행되었어야 마땅하다. 반면 그 시점에 합당하지 않은 일인데 장난스러운 말 한마디 때문에 나이 어린 제후를 세운 것이라면 이는 국정 운영을 그르치는 심각한 실책이다.

이미 내놓은 말을 반드시 지키는 것이 중요할까, 그 말을 뒤집더라도 합당하게 행하는 것이 중요할까? 유종원은 합당하지 않다면 말은 열 번을 바꿔도 문제 될 것 없다고 단언하였다. 진지하게 한 말이라 해도 이치와 상황에 합당하지 않다면 바꾸는 것이 옳은데, 장난스럽게 한 말까지 반드시 실행하게 만드는 우를 주공이 범했을 리 없다고 하면서 기록 자체의 신빙성까지 부정하였다. 잘못을 인정하고 말을 뒤집는 한이 있더라도 실행의 합당성을 따라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말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명심해야 할 덕목이다. 하지만 실수로 잘못 내뱉은 말이나 상황 변화에 따라 합당하지 않게 된 말이 전혀 없을 수는 없다. 차마 번복하지 못한 말 한마디가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까지 해치는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말에 얽매이기보다 무엇이 합당한지를 생각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영향력이 큰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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