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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충남에서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은 카페의 운영자로 일했다. 사회적기업 창업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을 때였고 우수사례로 남으려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아무리 뜻이 좋아도 엄연히 냉혹한 장사의 세계였다. 사회적기업도 수익은 못 내더라도 적자는 벗어나야 생존이 가능하다. 그때 심사와 인증 주체인 지자체에서 잘해보라며 컨설턴트 한 명을 파견해 주었다. 엄연히 세금 들어가는 일인 데다 자부담 비용도 들어가는 과정이었다. 무엇보다 경영개선이 절실했기 때문에 컨설턴트의 말을 하나라도 놓칠까 손가락이 아플 정도로 꼼꼼하게 적어 해보라는 건 다 해보았다. 돌이켜보니 서울에서 내려온 그가 한 상권 분석이란 고작 카페 주변을 몇 번 걸어다니며 산책을 한 수준이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컨설팅대로 장사는 되지 않았지만 그는 컨설팅 비용에 부가세까지 챙겨갔다. 사실 컨설팅이 아니라 사기였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지난 8월 ‘청년농업인연합회’ 회원들이 국회에 모여 자신들의 얘기를 풀어놓았다. 청년농업인을 육성해 희망찬 농촌을 만든다는 정부의 정책은 현실 앞에서 막히고, 농업정책에서 청년의 이름으로 소비만 될 뿐이라며 자조했다. 농촌에서 잘살아보고 싶지만 자본과 경험이 부족한 그들에게 내놓는 지원정책에는 컨설팅 과정이 반드시 들어간다. 그런데 청년농업인들이 공통으로 쏟아내는 분노는 바로 부실한 농촌 컨설팅 문제였다. 

일례로 한 청년이 반짝거리는 기획으로 농촌지원 사업 대상자로 선정되었다. 사업비 지원금은 총 5000만원. 하지만 이행 의무조항에 컨설팅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고 돼 있었다. 사업비 집행기관에서 추천해 주는 컨설팅 업체에 사업비의 10%인 5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아이디어가 사업으로 실행될 때 착오를 줄이고 청년농민이 농촌에 제대로 정착해서 살아나갈 수 있도록 돕는 농촌 컨설팅의 의미야 뭐가 나쁘겠는가. 문제는 부실한 컨설팅 과정이었다. 엄연히 농림축산식품부 등록 업체이지만 실제로는 농촌의 현실을 잘 알지도 못했다. 외려 청년이 컨설턴트에게 말한 농장 경영에 대한 포부와 그간 스스로 발로 뛰어 모은 자료를 그대로 가져가 PPT(파워포인트) 17장짜리 파일로 남겨주고 떠났다고 한다. 물론 500만원은 꼼꼼하게 챙겨갔다. 이 청년은 일명 ‘복붙(복사해서 붙이기)’ 혹은 ‘먹튀(먹고 튀는)’를 당한 것이다. 

그 컨설팅업체는 ‘농촌 컨설팅’, 그중에서도 정부가 역점으로 삼는 ‘청년농업인 육성’에 일조했노라며 경력을 부풀려 또 정부 인증을 받을 것이다. 청년농업인들은 태어났을 때 이미 세계는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일이 밥먹듯 쉬운 세대다. 그런데 농촌 컨설팅 수준은 여전히 SNS 사용법을 알려주며 농산물 판매에 적극 활용하라는 수준이다. 그날 차라리 서로 솔직히 까놓고 말하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몇몇 컨설턴트 업체와 지역 공무원들의 짬짜미를 그저 눈감고 있을 뿐이라고 말이다. 몇몇 사업비 냄새 잘 맡는 농업인들이 농가 경영개선 사업비를 따내 컨설팅 업체와 서로 눙치고 돈을 나눠 갖는 ‘백마진’ 방식의 컨설팅도 넘쳐난다는 것을 말이다. 

오죽하면 부실한 농촌 컨설팅업체들의 블랙리스트를 청년농업인이 작성해서 서로 정보를 나눠야 한다는 제안까지 나왔겠는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일들이 지금 농촌에서, 청년농업인들을 상대로 벌어지고 있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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