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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재·보궐 선거 이후 정치권이 페미니즘을 들먹이는 모습을 보면 기가 막힌다. 야당은 “민주당이 2030 남성의 표 결집력을 과소평가하고 여성주의 운동에만 올인해 선거에서 참패했다(이준석 국민의힘 전 최고위원)”고 분석한다. 참패 충격에 허둥대던 여당 곳곳에선 헛발질의 연속이다. 20여년 전 위헌결정이 난 군복무 가산점제 부활을 위해 개헌을 언급하고, 군 복무자를 국가유공자로 예우하는 법을 만들자고 한다. 남녀 군사훈련 의무 실시, 여성가족부를 청년가족부로 재편하자는 제안까지 나온다. 이들이 페미니즘의 ㅍ자라도 제대로 아는지 의심스럽다.

19세기 여성의 참정권 쟁취 운동으로 본격화된 페미니즘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차별적 대우를 받아온 여성들의 권리를 찾아,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자는 성평등 운동이다. 페미니즘 없이는 민주주의도 절반뿐이다. 그런데 반인종주의처럼 되돌릴 수 없는 국제사회의 상식이자 ‘기본값’이 된 페미니즘이 한국에선 유독 정쟁의 대상이 된다. 젊은 남성 정치인이 “페미니스트도 자기가 하고 싶으면 하면 된다” “시대착오적 페미니즘을 강요하지 말라”고 말한다. 페미니즘의 취지는 여성 우대가 아니라 구조적 차별을 없애고 상생하자는 것이다. 이런 기본개념부터 헷갈리고, 지엽적인 사실을 비틀어 틀린 걸 맞다고 우긴다. 페미니즘은 선택할 문제가 아니다. 여야는 20대 남성을 이야기하기 전 페미니즘에 대한 입장이 뭔지부터 확실히 밝혀야 한다.

문제는 페미니즘의 과잉이 아니라, 성평등 정책의 실질적 진전은 없이 이미지만 과잉됐다는 것이다. 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여당도 ‘여성주의에 올인’한 적이 없다. 4년 전 대선 후보 시절 문재인 대통령은 성평등 공약을 발표하며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언했다. 당시 36% 차이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인 남녀 간 임금격차를 임기 내에 OECD 평균인 15.3% 수준까지 줄이고, 30% 수준에서 출발해 임기 내 남녀 동수내각 구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사람이 먼저인 세상’은 바로 ‘성평등한 세상’ ”이라며, 국제사회의 추세와 발맞추겠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목표달성에 마땅히 따라야 할 정교한 이행계획과 끈질긴 점검, 보완책 마련이 없었다. 결국 공수표만 날린 셈이 됐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직장 내 여성 차별 수준을 지표화해 2013년부터 발표하는 ‘유리천장 지수’에서 한국은 9년째 꼴찌다. 올해 발표(2019년 자료 기준)에서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는 32.5%로 OECD 평균인 12.8%의 2.5배 수준이다. 바로 위 일본(23.5%)보다도 9%포인트 높다. 여성 중간관리자비율도 15.4%로, OECD 평균 33.2%의 절반도 안 된다. 취업시장에서 ‘남성이 최고의 스펙’이라는 한탄, 취업부터 승진, 퇴사까지 여성들이 부딪치는 견고한 유리천장과 유리벽은 대통령이 변화를 약속했던 때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실질적 성평등이 현실에서 뿌리내리지 못하고 부유하는 사이, 갈등과 논란만 과잉됐다.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는 몇년 전 언론인터뷰에서 젠더 갈등이 분단 갈등보다 심각하다고 했다. 지금은 더 나빠졌다. 서로를 겨눠 결딴낼 듯 싸우는 남녀 갈등과 혐오 수준은 통제불능 상태로 치닫고 있다.

왜 우리 사회 성평등 양상은 이 모양인가. 젠더갈등을 주도하는 세력은 정치권이다. 비판적 분석이나 대안 제시 없이 받아쓰기하는 언론도 이를 부추겨 왔다. 경제, 산업, 교육, 복지, 노동, 인구 등 사회의 주요문제 어느 하나 성평등과 긴밀히 엮이지 않은 분야가 없다. 사회의 총력을 다해 밀고 끌어 멀리뛰기를 해도 부족할 판에 우리는 실체도 모호한 젠더 갈등으로 서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우리는 제 발에 걸려 넘어질 수밖에 없다.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의 저자인 오마이뉴스 박정훈 기자는 젊은 남성들은 차츰 페미니즘을 상식으로 받아들이고 젠더 감수성이 높아지고 있는데, 정치권과 언론이 극단적인 주장들을 여과 없이 띄워주며 안티페미니즘을 공론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갈등과 혐오, 반목을 조장하는 정치에 넌덜머리를 내는 ‘말없는 다수’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정치권은 알아야 한다. 사회 절반을 버리고 갈 순 없다. 때에 따라 남성만, 여성만 편드는 정치는 계속 사회 발전의 발목을 잡을 뿐이다. 시민들은 진지한 토론의 장에서 꼬인 매듭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해결의 정치를 원한다. ‘갈라치기’는 최악의 정치다.

송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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