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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써놓은 글인데 어떡하나. ‘미디어비평’ 마감 날 아침에 일어나니 이태원 압사사고 사태로 세상 참담하다. 써둔 글의 취지가 비판적이라 표현이 뾰족해서 도저히 그대로 내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새로 써야 하는데, 아침에 정신없이 읽고 본 바를 언급할 수도, 안 할 수도 없어 곤혹스럽다. 독자께서는 다음 이어지는 문장들이 이런저런 고민 끝에 서둘러 마감한 꼴이라 그렇다고 양지해주시길 바란다. 

그렇다면 도대체 뭐가 뉴스란 말이냐. 내가 사실만으로 뉴스가 되는 건 아니라고 말할 때 돌아오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답해야 할 사람은 정작 뉴스를 만들어 먹고사는 분들이라 해야겠는데, 표준 정의를 따르더라도 기자가 쓴 것이 곧 뉴스이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이렇게 답해야 소용없다. 현대 언론의 문제는 대체로 누가 기자고, 무엇을 언론으로 간주해야 할지 헷갈리는 현실에서 기원을 두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언론이 이른바 ‘팩트’를 숭배하는 도그마에 빠졌고 그래서 사소하고, 재미없고, 때로 중요한 일을 놓친다고 비판해왔다. 이 비판 어디에도 사실 자체가 사소하고, 재미없고, 중요하지 않다는 함의는 없는데, 얼핏 그렇게 들리기도 하나보다. 나는 어쩐지 사실을 경시하고, 재미만 추구하고, 때로 중요한 일을 위해서 사실을 뭉개도 좋다는 주장을 하는 언론학자로 비쳐 변명을 강요받는다.

변명도 해명도 필요 없다. 사실에 대한 어떤 형이상학을 동원할 이유도 없다. 간단히 몇 가지 반례만 들면 충분하다. 사실을 충실하게 기술한 문장만으로도 얼마든지 편파적으로 보도할 수 있다. 사실을 정교하게 선택하고 이어 붙여서 사건의 전말을 오도할 수 있다. 해석과 비판을 배제하고 사실만 남겨 놓음으로써 모두가 외면하는 메마른 보도를 할 수 있다. 

사실이 아니라 진실을 추구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앞서 문장들에 등장한 모든 ‘사실’들을 ‘사실에 대한 진실한 문장들’로 대체해도 바뀌는 게 별로 없다. 사실들은 모호하고 진실은 복잡하니, 전자를 후자로 대체하면 진실에 대한 형이상학적 전제 때문에 사정이 복잡해지기만 할 뿐이다.

원래 내 비판의 요점은 사실에 충실한 보도를 강조할 뿐 독자에게 배움과 감동을 못 주고, 시청자의 탐구와 반성을 유도하지 못하는 우리 언론을 경고하는 데 있다. 명백한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사실보도라는 명목 뒤로 숨는 관행에 익숙한 기자들을 경계하는 데 있다. ‘그래도 팩트는 챙겼잖아.’ 뭔가 부족하거나 해명이 필요한 보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보도 관행에 자족하려는 언론이 내세우는 변명이다.  

예를 들어, 사고가 발생했는데 몇 명이 다치고 몇 명을 구조했다는 당국의 발표는 그야말로 사실이고 그것으로 뉴스가 된다. 그러나 사고를 당한 당사자를 면담해서 그의 경험을 재구성해서 이야기로 전달하는 일은 그저 그런 보도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어쩌면 훌륭한 뉴스가 될 수 있다. 당사자를 보호하고, 현장을 훼손하지 않으며, 선정성 시비에 빠지지 않으면서 면담기사를 쓰는 일이야말로 유능한 기자의 성취가 된다. 구조작업을 한 소방대원의 침착함, 선한 사마리아인의 용기, 오래된 통계치의 교묘함, 정부당국 대처의 치밀함 또는 허술함이 모두 좋은 뉴스가 될 수 있다.

‘팩트’면 충분하다는 변명이 고약한 이유는 그것이 모험적인 취재와 활기찬 보도를 가로막기 때문이다. 우리 언론인들은 실로 충격과 감동을 주는 기사를 쓰는 일에 몰두하기보다 오보를 피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그런데 스스로 범한 오보를 바로 잡는 후속보도야 말로 성실하고 유능한 기자의 임무가 된다. 

그래서 사실이 아니라면 무엇이 뉴스가 되어야 하나. 나도 따로 생각해 놓은 답변이 있지만, 그게 이 글의 요점은 아니다. 보도의 성공에 민감한 기자라면 스스로 고민해서 답해야 한다. 뉴스의 품질을 고민하는 편집국이라면 이미 고민 끝에 결정한 문제일 것이다. 나는 이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하는 방식이 언론의 품격을 결정한다고 믿는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연재 | 미디어 세상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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