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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왜 안 보였어?”

원젠은 아르바이트를 하던 도중 개인 메신저로 순오에게 물었다. 6만8000명이 넘는 네프(네트워크 프렌드) 중 순오는 가장 친한 네프였다. 원젠이 어느 사이트에 글을 올리면 1분 내에 반드시 순오가 반응했고, 결국 두 사람은 늘 인터넷으로 연결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동영상 공유 사이트와 VR 공감 서비스를 포함해 총 여덟 개의 네트워크 서비스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원젠에게 인터넷은 곧 일상이었고, 가장 큰 현실이었다.

그런데 순오가 사흘째 어떤 인터넷 활동도 하지 않은 참이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어? 병원?”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르고 순오가 대답했다.

“앞으로 네트워크 서비스는 거의 못 쓸 거야.”

원젠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느라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인터넷에서 취미를 나누고, 대화하고, VR을 통해 각자 만든 아바타를 놀리며 낄낄대고, 게임 속에서 함께 죽고 사는 걸 빼면 도대체 삶에 뭐가 남는단 말인가.

“이유가 뭔데?”

“어딘지 말은 안 하겠지만 나는 사실… 아버지가 꽤 큰 회사를 운영하고 있어. 하나가 아니고 여러 개야. 슬슬 후계자 수업을 하라는데, 그 첫 번째가 재벌가 애들과 공감을 나누는 거래. 직접 만나서 같이 놀러다니고 운동도 하라나. 그래야 공동운명체라는 생각이 든다더라고. 그러면 우리가 일반인이 아니고, 진짜 사람이란 점을 깨달을 거래.”

원젠은 생각했다. ‘진짜 사람’이라니. 그럼 저 사람들처럼 구식으로 만나서 부유한 자들의 공감대에 동참할 수 없는 사람들은 ‘가짜 사람’이란 말인가? 2050년대에 새 계급은 이런 식으로 나눠지는 걸까?

“내가 그동안 인터넷에서 활동하면서 벌었던 e코인은 전부 줄게. 너라면 나쁜 뜻으로 오해하진 않을 거라 믿어. 그럼 이만.”

개인 메시지 창 위로 e코인 계좌를 가리키는 아이콘이 반짝거렸다. 원젠은 클릭해서 금액을 확인하지 않았지만 적지 않은 돈이라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분노 때문에 반송하려 했지만, 생각을 고쳐먹고 그 e코인을 더 유용한 곳에 쓰기로 했다.

옛 가치가 신귀족과 ‘가짜 인간’을 가르는 기준이라고? 그런 식으로 계급을 나눠서 경제를 계속 움켜쥐겠다는 거지?

하지만 원젠의 신념은 확고했다. 인간은 이제 디지털의 힘을 빌려 다음 세대로 나아가고 있었다. 옛 형식을 미화해서 지위를 고수하려는 자들이야말로 인류의 발목을 옥죄는 존재였다.

언제일지는 모르나 나중에, 디지털 인간이 ‘진짜 인간’임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때가 오면 원젠은 순오를 온라인으로 다시 만나 그가 진심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볼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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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인사이더(Business Insider)’지의 칼럼 중 눈길을 끄는 글이 있어 살펴봤다.

실리콘밸리에 살며 첨단 IT 사업에 종사하고 있는 부모들이 자녀의 인터넷 사용과  앱  사용을 크게 제한하거나 금지한다는 글이었다. 이유는 가끔씩 우리나라 교육전문가들이 제기하는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현재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인터넷 콘텐츠, 사회관계망서비스, 게임을 포함한 각종 앱이 아이의 관심을 지나치게 빼앗고,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크게 훼손한다는 것이다.

필자 역시 이 문제에 큰 관심이 있다. 조금만 눈을 돌려보아도 사람들이 생활하는 모습은 예전과 다르다. 즉시 효과가 나타나는 보상을 미끼로 돈을 끌어들이는 게임들은 그 특성 때문에 사용자의 감정 조절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주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는 예전과 다른 통로로 절제되지 않은 감정을 분출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있기 때문에 그 속에서 벌어지는 교류는 예전과 다르다.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온라인 인기 투표 시스템은 오래전부터 단순한 재미를 넘어 경제활동과 연결되고 있다.

그리고 한편에는, 이 모든 현실이 인간성을 훼손한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뉴스는 온갖 자극적인 범죄 소식과 혐오에 기반한 충돌을 보도하며, 가끔씩 옛날이 더 좋았다고 주장하고 계도하려는, 나이 많은 자칭 전문가를 출연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인류 역사상 옛 가치가 무조건 좋다고 계도해서 세상이 역행한 적이 있었는가? 환경과 존재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은 의심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기술로 환경을 만들어갈 수 있는 존재다. 변화는 가속될 테고, 영향을 주고받는 속도 또한 빨라질 것이다. 그 결과 어떤 세상이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함께 다독이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그 다독임이, ‘공감’이 미래에 과연 어떤 식으로 구현될지는 알 수 없다.

억지로 소중한 가치를 소멸시키려 들지 말고, 그러면서도 변화를 일부러 외면하지 않는 것. 그 변화가 어쩌면 근본적인 부분까지 허물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이 태도야말로 기술이 크게 바꾸어 갈 미래에 우리가 가장 먼저 갖춰야 할 공감대일 것이다.

<김창규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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