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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후에도 팬데믹은 지속될 것이라고 한다. 내후년까지 마스크를 써야 한다니, 내 세대에 지구 멸망을 맞는 느낌이다. 전염병의 원인은 문명의 이름으로 자행된 자연 파괴라는 데 이견이 없다. 현재 삶의 시스템으로는 답이 없을 뿐, 우리는 코로나19의 원인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은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인간 행동이다. 유럽인들의 마스크 조롱, 거부 시위는 개인주의의 산물인가. 미국에서 감염자와 함께 파티를 즐긴 후 미감염자 중 가장 빨리 사망하는 사람을 가려내는 게임은, 전염병은 ‘후진국’에서나 발생한다는 서구인의 자부심 때문인가. “정부가 바이러스를 교회에 퍼붓고 있다”는 전광훈 목사의 존재도 인간에 대한 절망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나는 당국과 여론의 전광훈 목사에 대한 관대한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 평소 사회적 약자에 대한 댓글 테러나 혐오 담론에 비하면, 타인의 생명을 좌우하고 있는 전 목사에 대해서는 ‘기껏’ 보석의 합리성‘이나’ 논하고 있다. 우리는 드디어 법치주의 사회가 된 것인가?

기독교세력의 표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닌 것 같다. 17대 대선 때 이명박 후보는 호남에서 20%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얻었다. 기존 5% 이하의 득표율을 생각할 때,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명박 장로님’이 광주 학살을 비롯, 수백년에 걸친 지역 차별을 ‘잊게 하신 것’이다. 전 목사의 경우는 다르다. 세계 최대의 순복음교회도 방역당국에 협조적이며, 일부 기독교 단체들은 그를 대신해 사과했다. 불교계나 천주교도 마찬가지다. 이들에 비하면 극우 종교세력의 표는 적다. 생계와 일상이 파괴된 시민의 표와 비교할 수 없다.

그렇다면 ‘전광훈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그의 무기는-신자유주의 시대에 걸맞게-자기도취라는 심리적, ‘개인적 역량’이 아닐까. 그의 자원은 언어 파괴, 돈과 명예에 대한 추구, 인격 장애다. 유신, 5공 시절이 독재 정권인 이유가 국가권력이 국민의 생존과 권리를 짓밟았기 때문이라면, 지금 그 행동을 하는 이는 ‘전광훈’이고, 그가 방역독재자다.

전 목사가 공동체 명운이 달린 문제에, 무리수를 두고 방역을 방해하는 이유가 독실한 신앙의 발로라면, “네 이웃부터 사랑하라”고 말하고 싶다. 대다수 시민에게 그는 “정말 나쁜 사람”이지만 추종자에겐 영웅이다. 악명이든, 유명이든 이른바 ‘관종’이 자원을 얻는 시대다. 국민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데에는 돈이든, 영향력이든 얻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원하는 것이 서울시 합정동 절두산 성지에서 희생된 이들이 겪은 1866년 병인박해 때의 ‘절두(切頭)’는 아닐 것이다.

시민들의 호소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그의 자신감, 뻔뻔함, 조증을 총칭하는 요즘 단어가 ‘정신승리’다. 정권에 대한 항거는 그의 자유지만, 다른 내용과 방식의 항의였으면 한다. 당장 개천절집회부터 멈춰야 할 것이다.

급기야 순교 담론이 등장했는데, 이를 반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가 의도했든 아니든, 신자유주의 시대의 특징을 잘 활용한 언설이다. 각자도생의 생활환경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 양심과 협상하며 일상을 산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누구나 정도와 자책감의 차이가 있을 뿐 나쁜 행동을 피할 수 없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시대 유일한 윤리적 주체가 ‘피해자’인 이유다. 모두가 “내가 피해자”라고 외치고 있다. 주님에게 용서받을 수 없는 전광훈 목사의 가장 큰 죄는, 희생자‘까지’ 되고 싶은 순교자 욕망이다.

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이들에게 목회자들은 말한다. “신은 당신 마음에 늘 함께하십니다.” 맞다. 그러므로 비상시에는 주님을 만나러 굳이 예배당에 갈 필요가 없다. 경기도 고양시의 ‘씨앗교회’처럼 교회 공간을 포기하고, 보증금과 월세에 헌금을 더해 신자들에게 ‘기본 소득’으로 나눠주는 곳도 있다. 물론 그가 순교할 가능성은 없다. 코로나19 확진 이후 완치됐으며 건강하고 낙천적이고 늘 웃음을 잃지 않는다. 코로나 시대 순교자가 나오지 않게 하려면, 방역당국과 의료진의 건강부터 걱정해야 할 것이다.

<정희진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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