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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휘 OO은대학연구소 2소장

불쌍합디다, 청년 손수조. 꼭 떨어져서만은 아니에요. 꼭 ‘3000만원 선거 뽀개기’ 공약 소동 때문은 아니에요. 꼭 문재인의 정략적 대항마로 신인 데뷔한 탓도 아니고요. 꼭 박근혜 대세론에 의존해서도 아니고요. 선거철에 이들 요인을 한데 빨아올린 미디어 정치쇼의 반짝 스타로 부상했다 급격히 잊혀져가는 27세 청년 손수조의 처지와 앞날이 팍팍하게 느껴져서랍니다. 손수조 현상이 두 달여의 ‘트루먼쇼’로 끝나길 원치 않는 손수조라면 자신을 재발견하고 묵묵히 책임지는 행동만 남은 것 같아서죠.

어쩌겠어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퇴장할 게 아니면 이제부터라도 청년의 일원으로서 지역공동체를 위한 세밀한 공약을 손발로 만들어야죠. 장소에 뿌리를 내리고 주민들과 같이 일상의 공적 활동을 시작해야지요. 그러자면 거대 권력투쟁이 일으키는 한때의 소용돌이에 일신을 던지는 배짱만큼이나, <트루먼쇼>의 주인공 트루먼이 배후의 조종자 크리스노프와 마지막에 주고받는 다음 문답처럼 성찰의 용기도 있어야지요. “난 누구죠?” “자넨 스타야.” “전부 가짜였군요.”

청년 대표로 후보자를 자처했던 이들 모두 다르지 않죠. 당락을 떠나 마침내 같은 원점에 다시 선 셈이죠. 다만 손수조는 조금 더 유명인이 됐다고 할까요. 이 점에서 그를 불러내고 이름값을 키운 새누리당도 청년 손수조를 책임져야 합니다. 청년을 일회용 부품으로 쓰고 버리는 세태에 진저리가 난 청년들에게 희망을 공언해온 정당들이 자기 당을 대표한 청년들을 어찌 사용하고 처분하는지 또래 청년들이 지켜보고 있으니까요.

그나저나 이번 선거를 보니 청년문제의 개선 기미가 있던가요. 역시 팍팍하지요. 그러나 지금이 적기가 아닐까 해요. 선거란, 정치란, 권력이란 무엇인가 또 무엇이어야 할까 하는 토론이 청년들 사이에서 넓어지고 깊어져야 할 적절한 때 말이죠. 낙담하고 좌절하고 막막해지는 순간이야말로 자아가 바람직하게 깨지면서 탈바꿈하는 계기들이 한가득 명멸하는지라 건질 ‘왕건이’가 많거든요. 관건은 그런 체험을 나누고 배가시킬 우애의 관계를 잇고 또 잇는 활동이 청년의 생활로 자리잡는 겁니다.

 

민주통합당 안상현 청년 비례대표 후보, 새누리당 이준석 비상대책위원, 통합진보당 김재연 청년 비례대표 후보 I 출처:경향DB

청년의 정치세력화 또는 청년의 권력공간 발생이 현실의 해법이라면 그것은 이제 대규모 집회나 촛불로 일점 돌파하는 것은 아닐 듯싶어서죠. 그런 집합을 반복한다고 역량이 점증하는 것도 아닐 듯하고요. 한 방으로 통하는 건 없어진 세상이지요. 방도는 청년들이 점점점 영향력을 찍고 이를 선선선 연결해서 세력화의 면적과 권력공간의 부피를 야금야금 불리는 길뿐이에요. 이게 가장 빠른 길이죠. 이런 흐름을 타고 청년들이 2년 뒤 지방선거부터 새로 등장할 마음 먹고 출마할 때라야 결실을 맺어요.

물론 청년세대 단독으로 뭘 이룬다고 장담하긴 힘들지요. 꼭 다른 세대와 연대를 형성해야 뭐라도 되는 법이고요. 그래서 이번 선거처럼 청년 후보들이 <슈스케> 같은 쇼를 거쳐 기존 세력과 권력공간 안에 편입도 했겠지만 이것은 강가에 단지 몇 방울 똑똑똑 떨어진 거죠. 청년들끼리 어울려서 지역 주민들 속에서 지지받는 일상의 활동이 한해 두해 차곡차곡 누적되어야만 합니다. 이 과정에서 세대 간 정의가 무엇이지 그것을 넘어서는 세대 간 환대가 무엇인지 경험하는 일이 제일 중요해요.

이를 겪어서 알게 된 청년 집단들이 공명하는 장에서 교류하고 응원받는 청년 대표라야 비로소 정치 생명력을 득하게 될 겁니다. 그렇게 탄생하는 선거 정국의 청년 영웅과 스타는 그가 무엇을 선도한다기보다는 함께했던 또래들로부터 계속 준비되고 있는 잠재적인 다수 영웅들과 다수 스타들 사이에서 애용되는 캐릭터로서 먼저 등장했다가 친구와 교대하듯 역할을 순환하는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의 첫 이름이 되는 거죠.

지금 여기는 27세 김영삼 국회의원이 등장했던 자유당 시절과 다르고 이른바 386 세대 일부가 정계 진출했던 투쟁 무대와 딴판입니다. 이미 망한 세상에서 완전히 다르게 상상하는 원점 회귀의 시대 문턱에 청년이 있는 거죠. 이 좌표를 모른 채 막차 맨 뒤칸에 올라타서 하려니 꼬이는 건지 몰라요. 흔들리는 몸을 추슬러 조종칸까지 가서 철로 방향을 바꾸려다 훌쩍 나이 먹고 객실 차량 어느 자리에 주저앉고 마는 거죠. 이러느니 당장은 고되어도 자기 손발로 수레 끄는 것이 살뜰하고 아름답고 두루 이로울 것 같네요.

이것이 손수조가 손수조를 책임지는 길이다 싶어요. 선거에 이름 올린 청년들, 투표한 청년들, 기권한 청년들에게 세상은 이제 너는 너를 책임지라고, 어제의 자기계발 구령과 다른 뜻에서 수레 끌고 가느냐고 물어보네요. 그래서 하루하루 꾸준히 여기에서 저기로 수레 끌고 가는 청년은 불쌍하지 않아요. 당당하고 담담합니다. 내가 끄는 구불구불 수레길에 기성 정치는 무슨 책임을 질 것인지 당당하게 요청하고 나를 응원하는 다른 세대에게 담담하게 감사할 줄 아는 청년이 되어 있을 테니까요. 아무튼 청년 후보들 고생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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