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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산에 뜨거운 불길이 뇌성벽력 요동치고, 하늘로 치솟는 붉은 화염에 은하마저 말랐어라. 허다한 가시덤불이야 태워 버려도 그만이지만, 고고한 소나무 백 년 가지가 너무도 애석하도다.” 영조 때 문인 송명흠이 산불을 보며 읊은 시이다. 요 며칠, 울진의 소나무들이 눈에 밟힌다. 새파란 바다 빛에 어우러져 말쑥하고 늠름하게 서 있던 그 푸른 소나무들. 뉴스를 통해 보는데도 바지직바지직 그 입 꽉 다문 아우성이 들리는 듯하다.

화재를 마귀에 비유한 화마(火魔)라는 표현은 참으로 실감 나는 말이다. 불가에서는 이 세계의 괴멸을 겁화(劫火)라는 엄청난 불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처럼 불은 일단 번지고 나면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공포의 대상이다. “곤강(崑岡)에 불이 나면 옥이나 돌이나 모조리 타 버린다”는 <서경> 구절이 많이 회자되어 온 것은,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게 무엇인지 전혀 개의치 않고 모든 것을 완전히 쓸어가 버리는 불의 무지막지한 위력 때문이다. 인조 때 문인 조경도 산불을 보며 “사악하고 더러운 것 제거함이 하늘의 뜻이라 해도, 곤강의 옥마저 불타 버리니 이를 어쩐단 말인가”라고 탄식했다.

이번 울진 산불 역시 사람의 부주의로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시작은 사람이 했어도 사람의 힘으로 끝내기는 참으로 쉽지 않다. 인력과 장비가 총동원되어 연일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종잡을 수 없이 바뀌는 바람 탓에 여전히 불길을 제압하지 못하고 있다.

사람이 불러일으킨 자연의 위력은 고스란히 사람의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바람이 잦아들고 고마운 비가 시원하게 내려 주시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21세기 첨단과학의 시대에 역시, 결국 자연이 해결해 주기를 기대하고 기다리게 되는 것이 사람이다.

숙종 때의 문인 조태채는 산불을 이렇게 읊었다. “밤새 숲으로 번지는 불의 기세 막을 수 없어, 울창했던 온 산이 반은 재가 되었네. 누가 말했던가, 죽은 풀엔 생기가 없다고. 봄빛은 타 버린 이곳을 가장 먼저 회복시키는 것을.” 부디 이 악몽 같은 시간이 속히 지나가고 난 자리에서, 조태채가 보았던 그 놀라운 회복의 기운을 발견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자연도 사람도 소생해야 마땅한 이 봄날에.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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