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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전체가 부패했다. 국회의원들이 예산을 빼먹는 세금도둑질을 관행처럼 해왔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연간 86억원의 입법 및 정책개발비, 연간 39억원의 정책자료·홍보물 발간비에 대해 불과 1년치만 조사했는데도 예산 낭비를 넘어서서 범죄에 해당하는 건들이 수두룩하다. 뒤늦게 예산을 자진반납한 국회의원이 14명, 반납 액수가 1억810만원에 달한다. 그러나 반납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철저하게 수사해서 엄벌에 처해야 한다. 죄질이 너무 나쁘다.  

하지도 않은 허위 정책연구용역을 발주한 것처럼 꾸며서 세금을 빼먹은 사례, 유령연구단체에 연구용역을 발주한 사례들이 잇따라 적발되었다. 시정잡배들도 하지 않을 일들이다. 이 모든 것은 3개 시민단체(세금도둑잡아라, 좋은예산센터,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와 뉴스타파의 협업에 의해 드러난 사실들이다. 최근에는 민주당 유동수 의원실에서 디자인인쇄업체에 인쇄비조로 980만원을 지급했다가 인턴비서 통장을 통해 돌려받은 사례가 드러났다. 

그러나 지금 드러난 것도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수사권도 없는 시민단체와 독립언론이 정보공개소송을 해서 밝혀낸 사실이기 때문이다. 만약 검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한다면, 얼마나 많은 세금도둑질이 드러날지 알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국회의원 300명 중에 누구 하나 이런 비리를 감시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문제가 드러난 지금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국회의원이 한 명도 없다. 아마 다른 기관에서 이런 광범위한 비리가 적발됐다면, 국회의원들은 특별검사를 도입하자, 국정조사를 하자 등등 난리를 피웠을 것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국회의원들의 비리가 드러나자 국회 안은 조용하기만 하다.

그리고 지금도 비리를 은폐하기 위해 정보공개를 거부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국회는 국민 세금으로 수행된 국회의원들의 정책연구 용역보고서를 여전히 비공개하고 있다. 피감기관 예산으로 해외출장을 다녀와서 ‘김영란법’을 위반한 혐의를 받고 있는 국회의원 38명의 명단공개도 거부하고 있다.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가 이렇게 썩어 있다는 것은 한심하고 참담한 일이다. 국회를 해산하고 재구성하는 수준의 개혁이 필요하다. 그러나 국회를 해산할 방법이 없기에, 부패한 300명을 대체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국회의원들의 연봉, 각종 혜택, 보좌진 규모 등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것이다.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대우를 스스로 결정하는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요즘 유행인 공론화 방식을 여기에 도입하면 된다. 국민들이 직접 참여해서 국회의원들의 연봉과 혜택을 다시 정하자. 

둘째는, 부패한 국회를 혁신할 수 있는 선거제도 개혁이다. 지금의 선거제도가 유지되면 부패와 침묵의 카르텔은 그대로 계속될 것이다. 기득권 정당들로 국회가 채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대안은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를 개혁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패에 찌든 기득권 정당들을 감시·견제할 수 있는 정치세력이 국회로 더 많이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지금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쟁점은 국회의원 숫자 문제로 좁혀져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해야 하기 때문에, 지역구에서 당선이 어려운 정당들에도 정당득표율만큼 비례대표 의석이 배분된다. 가령 10%의 정당지지를 받는 정당은 지역구에서는 당선이 어렵지만,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받아 10%의 국회의석을 채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려면 배분할 비례대표 의석이 충분하게 있어야 한다. 그래서 현재 47석인 비례대표 의석을 100석 정도로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면 전체 의석도 360석 정도로 늘어야 한다. 그런데 ‘연동형 비례대표제’ 자체를 반대할 명분이 없자, 기득권 세력들은 ‘국회의원 숫자를 늘리는 것에 국민들이 반대하기 때문에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어렵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의 과도한 연봉을 줄이고 특권을 없애는 것만 보장된다면, 국민들도 국회의원 숫자 늘리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 국회의원 숫자를 늘려서라도 부패 없고 밥값 하는 국회를 만드는 게 주권자인 국민들에게 이득인 것은 분명하다. 

1993년 뉴질랜드가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를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꿀 당시에 뉴질랜드의 시민단체들이 내건 슬로건이 있다. ‘99명의 독재보다는 120명의 민주주의가 낫다’라는 것이었다. 당시에 뉴질랜드도 선거제도 개혁을 하려면 국회의원 숫자를 기존의 99명에서 120명으로 늘려야 했다. 물론 그에 대한 저항감은 뉴질랜드에서도 심했다. 그러나 뉴질랜드 국민들은 현명한 선택을 했다. 국민투표에서 53.9%가 국회의원 숫자를 늘려서라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데 찬성한 것이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300명의 부패한 국회를 개혁하려면, 선거제도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국회의원 숫자를 360명으로 늘려야 한다. 부패한 기득권세력들은 여기에 반대한다. 양심적인 시민사회단체와 지식인들, 그래도 개혁의 편에 서고자 하는 정치인들은 여기에 찬성한다. 선택지는 명확하다. ‘특권폐지-의석확대-선거제도 개혁’이 답이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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