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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운영위원회 출석을 거부하며 사의를 표명한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표를 수리했다. 김 전 수석이 밝힌 불출석 사유는 “민정수석이 정치공세에 굴복해 국회에 출석하는 나쁜 선례를 남기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야 합의는 물론 직속상관인 김기춘 비서실장의 지시까지 거부한 이유치고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역대 민정수석 가운데 3명이 5차례나 국회에 나온 바도 있지 않은가. 사표를 던진 데 다른 배경이 작용했으리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민정수석실은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문건 수사 과정에서 유출자로 지목된 한모 경위를 회유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수사 도중 자살한 최모 경위가 유서에서 동료인 한 경위에게 “민정비서관실에서 그런 제의가 들어오면 흔들리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말을 남긴 터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지만, 스스로 죽음을 택하면서까지 거짓말을 할 까닭이 있겠는가. 한 경위도 이후 JTBC 인터뷰에서 ‘자백하면 불입건될 것’이란 말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청와대의 대응이다. 청와대는 한 경위와 접촉조차 없었다면서도 JTBC 측에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세계일보의 ‘정윤회 문건’ 보도가 나온 당일 발 빠르게 세계일보 측을 고소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 전 수석이 항명 파동까지 일으키며 국회 출석을 거부한 것은 ‘회유 공작’이 사실일 가능성을 높여준다. 김 전 수석이 스스로 입을 닫는 형식으로 경찰 회유 의혹을 덮으려 한 정황이 짙다.

청와대 문건유출 파동으로 9일 오전 국회운용위원회에 출석한 김기춘 비서실장이 회의장 문을 들어서고 있다. (출처 : 경향DB)


박 대통령은 문건 유출을 “국기문란”으로 규정하며 질타했다. 만약 수사 대상인 청와대가 수사에 개입하고 관련자를 회유했다면, 문건 유출 따위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최악의 국기문란 범죄가 된다. 검찰은 그럼에도 ‘한 경위 변호인 측에서 회유설을 들은 바 없다고 한다’는 이유로 “별도의 수사 단서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한 경위를 소환하지도, 김영한 전 수석이나 우병우 민정비서관을 조사하지도 않았다. 청와대 쪽에 흙탕물이 튈까봐 철통방어한 흔적이 역력하다.

일각에서는 정윤회 파동 수습 작업을 김 실장과 우 비서관이 주도했는데, 김 전 수석 자신이 총대를 메게 된 데 불만을 품었다는 해석도 나오는 모양이다. 참으로 볼썽사나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청와대는 김 전 수석 면직으로 어물쩍 넘어가려 할 때가 아니다. ‘한 경위 회유 공작’을 포함해 청와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철저히 조사해 국민 앞에 가감 없이 밝혀야 한다. 청와대가 이를 회피하면 국회 국정조사와 특별검사 수사로 규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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