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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국회 개원 이후 첫 정기국회가 시작부터 파행으로 얼룩졌다. 새누리당이 정세균 국회의장의 개회사를 문제 삼아 의사일정 전면 거부를 선언하면서다. 정 의장은 어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과 관련한 논란은 국민 여러분께 부끄럽고 민망한 일”이라며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을 촉구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와 관련해서도 “우리 내부에서 소통이 없었고, 주변국과의 관계 변화 또한 깊이 고려한 것 같지 않다”고 지적했다. 새누리당은 강력히 반발하며 의사일정을 보이콧하고 정 의장에 대한 사퇴촉구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 때문에 여야가 가까스로 합의한 추가경정예산안 처리는 또다시 미뤄졌다.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1일 정기국회 개회식 도중 정세균 국회의장이 개회 연설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한반도 배치 결정에 대해 정부를 비판하자 항의의 뜻으로 줄지어 본회의장에서 퇴장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새누리당이 반발하는 이유는 국회의장 선출 후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 신분인 정 의장이 국회법에서 정한 ‘중립의무’를 내팽개치고 야당에 편향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반면 정 의장은 “정파의 입장이 아닌 국민의 뜻을 말한 것”이라고 했다. 국회법은 국회의장의 당적 보유를 금지하고 있으나, 직접적으로 중립 의무를 명시하고 있지는 않다.

정 의장 발언에 새누리당을 자극할 만한 여지가 일부 있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기국회 첫날부터, 그것도 오랫동안 지연돼온 추경안 처리가 예정된 날 본회의를 파행으로 몰아간 건 도가 지나치다. 과거에도 여당 출신 국회의장이 야당을 상대로 훈계조 발언을 한 사례가 있었지만, 야당 일부 의원들이 의석에서 반발하거나 원내지도부가 별도로 유감을 표시하는 선에서 마무리되곤 했다. 국회를 대표하는 의장의 권위를 존중했기 때문이다. 입법부 수장인 국회의장이 행정부를 향해 쓴소리 한마디 못한다면, 그런 의장은 뽑을 필요가 없지 않나.

앞서 새누리당은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도 거부해 논란을 빚었다. 여당이 청문회를 보이콧한 것은 인사청문제도 도입 이후 16년 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새누리당은 19대 국회에서 야당이 테러방지법에 반대하는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를 할 때 뭐라고 했던가. 국회법에 따른 정당한 행위임에도 ‘발목 잡기’라고 비난했다. 지금 여소야대라고는 하나, 새누리당은 원내 1당이자 국정에 무한 책임을 지는 집권당이다. 대통령이 인사청문을 요청한 국무위원 후보자 청문회와 정부가 편성한 ‘민생 추경’ 처리를 보이콧하는 것은 여당이 할 일이 아니다. 새누리당은 더 이상 몽니 부리지 말고 의사일정에 복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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