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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사별한 뒤 생활고에 시달리던 40대 여성이 네 살 난 딸과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 주검이 수개월 만에 발견됐다는 소식은 우리의 가슴을 친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6일 오후 충북 증평군 증평읍의 한 아파트 4층 집 안방에서 모녀의 시신이 발견됐다. 여성은 “혼자 살기가 너무 힘들다. 딸을 먼저 데려간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부검 결과 이 여성이 독극물을 먹고 흉기로 자해한 ‘자살’로 추정했다.

서울 송파구에서 세 모녀가 생활고에 못 이겨 자살한 사건과 관련해 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 중회의실에서 열린 ‘복지사각지대 발굴·지원 특별조사 실시 회의’에서 박용현 보건복지부 사회복지정책실장이 각 광역시·도 복지담당 국장들과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2014.3.5 연합뉴스

이 여성은 남편이 지난해 9월 사업 실패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극심한 생활고를 겪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딸에게 매달 지급되는 가정양육수당 10만원이 전부였다. 정부는 2014년 ‘송파 세모녀’ 사건 이후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가구를 점검하는 제도를 마련해 2015년 12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단전, 단수, 가스공급 중단, 건강보험료 체납 등 27개 항목의 정보를 토대로 고위험 가구를 발굴해 집중관리하는 방식이다. 이 시스템으로 증평군에서 올해 1월과 3월에 수급대상 122가구를 발견했지만 모녀는 빠져 있었다. 임대 아파트 보증금이 1억원이 넘어 수급요건에 맞지 않았고, 공동주택은 관리비를 체납해도 곧바로 단수·단전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발견하기 어려웠다. 점검 시스템의 체크항목이 현실에 맞지 않는다면 정밀하게 보완할 필요가 있다.

복지 시스템의 허점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모녀가 극단적인 방식으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관심을 갖는 이들이 주변에 없었다는 점이다. 지난해 12월부터 모녀 가구의 수도 사용량이 ‘0’이었고, 우편함에는 연체된 카드대금 등 각종 독촉장이 쌓여 있었다고 한다. 여러 가구가 모여 사는 공동주택이라곤 하지만 이웃 간의 교류가 없으면 외딴 섬이나 마찬가지다.

아파트가 한국 주거형태의 다수를 점하게 되는 것과 비례해 공동체 의식은 희박해지고 있다. 아파트 거주자들은 옆집 이웃과 간혹 마주쳐도 눈인사가 고작인 경우가 적지 않다. 아래층, 위층 가구와 교류는커녕 층간소음으로 다투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현관문만 닫으면 절대고독의 세계가 펼쳐진다. 더구나 한국 사회는 고령화가 초고속으로 진행되고 있어 이웃 간의 교류가 더 절실해지지만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이는 정부나 자치단체에 맡길 문제도 아니다. 증평 모녀의 비극은 공동체성 회복을 위한 사회적 노력이 시급함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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