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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문을 제대로 잠그지 않았지요?” “왜 옷을 야하게 입었나요?”

범죄가 일어났을 때 피해자를 탓하는 건 대체로 부도덕하다. 비난은 범죄를 저지른 이에게 향해야지, 안 그래도 범죄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피해자에게 그 책임을 덧씌우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럼에도 ‘대체로 부도덕하다’는 표현을 쓴 이유는, 어떤 범죄는 피해자에게도 그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중고차 사기를 예로 들어보자. 중고차 딜러가 2018년형 뉴 쏘렌토 2.2 디젤 차량을 1000만원에 판다는 광고를 인터넷에 띄운다. 주행거리도 4만㎞에 불과했고, 무사고란다. 이 정도면 최소한 3000만원은 줘야 할 텐데 1000만원이라니, 이건 정말 말도 안되는 가격이다. 마음이 급해져 전화를 건다. “지금 당장 갈 테니까 다른 사람한테 팔지 마세요.” 물론 좀 이상한 느낌이 들기는 한다. 왜 이렇게 싸게 파는 걸까? 가는 차 안에서 딜러에게 전화해 물어본다. 딜러는 웃으며 답한다. “경매장에서 싸게 구입했거든요. 그 가격보다 터무니없이 비싸게 팔 수는 없죠.” 그다음 상황은 안 봐도 뻔하다. 딜러는 구매자가 인터넷에서 본 차가 아닌, 다른 차를 보여준다. “손님이 오시는 동안 다른 분이 사갔어요. 다른 차를 보시죠.” 심지어 차종도, 색깔도 다른 차를 보여주며 “이게 네가 본 차가 맞다”고 우기는 딜러도 있다. 화를 내고 나가는 이도 있겠지만, 소심한 이들은 딜러의 기세에 눌려 침수됐던 차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구입한다. 물론 사기를 친 그 딜러에게 비난이 가해지는 게 맞다. 하지만 당한 이는 책임이 없는 것일까? 좋은 차를 제값에 사는 대신 시세보다 2000만원이나 싸게 사려는 욕심이 아니었다면 사기 딜러를 만날 일은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이렇게 본다면 사기란 당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이미 도사리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일러스트 _ 김상민 기자

지금부터 10년 전인 2009년 3월, 장자연씨가 사망했다. 그가 죽기 전 작성한 문건으로 보건대, 고위층의 술접대 자리에 불려가고, 거기서 험한 일을 겪은 것이 그가 죽음을 결심한 이유로 추측됐다. 안타깝게도 고위층에 대한 수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연루된 고위층 인사 중 한 명이 C일보 사주라는 설도 나돌았다. 사람들, 특히 진보를 지지하는 분들이 이 사건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가진 것도 그 때문이었다. 정권이 바뀌자 과거사위원회는 소위 장자연사건을 재조사하기 시작했다. 위원회는 캐나다에 살던 윤지오씨를 불렀다. 윤씨는 고인과 같은 소속사 배우로, 장씨처럼 술접대에 불려나간 적이 있었다. 또한 그는 소위 장자연 문건도 본 적이 있다고 했으니, 위원회가 봤을 때 아주 핵심적인 증인이었다. 대통령의 철저한 재수사 지시가 있던 날, 윤지오씨는 자신의 인스타에 이렇게 썼다. “10년 동안 일관되게 진술한 유일한 증인으로 걸어온 지난날이 드디어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희망을 처음으로 갖게 됐다.” 윤씨가 방송에 출연해 자신의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자 폭발적인 반응이 왔다.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 용기를 내서 권력을 고발하는 일에 동참한다니, 이 얼마나 기특한가? 

하지만 이상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윤씨는 자신이 장씨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이며, 그 때문에 10년간 숨어 살았다고 했다. 늘 감시에 시달렸고, 차 사고로 목숨을 잃을 뻔한 적도 있다고 했다. 여성가족부가 숙소와 더불어 여경 5명을 윤씨에게 제공하는 등 신변 보호에 신경을 썼던 것도 그 때문이지만, 그 위협은 전혀 실체가 없었다. 장씨 사망 후 윤씨는 숨어 살기는커녕 한국에서 꾸준히 연예활동을 했고, 캐나다에서도 아무런 제약 없이 일상의 삶을 살았다. 그가 겪었다는 교통사고도 알고 보니 빙판길에 차가 미끄러져 생긴, 흔한 접촉사고였다. 스마트워치로 비상호출을 눌렀는데 경찰이 오지 않았다는 것 역시 윤씨가 버튼을 잘못 누른 것에 불과했다. 진실규명에 대한 윤씨의 진정성도 의심받기 시작했다. 윤씨가 고인과 살아생전 그리 친한 사이도 아니었다는 증언이 나왔고, 문건을 봤다는 것도 사실 여부가 불투명했다. 김수민 작가가 공개한 카톡 문자에 의하면 윤씨는 유가족의 동의도 받지 않고 고인의 이야기를 담은 <13번째 증인>을 출간했고, 책으로 벌어들인 수입은 유가족이 건드릴 수 없게 조치했단다. “IPTV나 언론은 내가 다 가져가려고/ 강연 공연도 조율해 보고”라는 카톡 문자, 경호 비용이 필요하다며 마련한 후원계좌 등등을 보면 그의 의도가 짐작된다. 이렇게 본다면 윤씨가 쓴 다음 카톡 문자도 이해가 된다. “책이 안 팔린다 해도 이슈는 될 테니까, 그 이슈를 이용해서 그간 못했던 것들을 영리하게 해보려고 한다.”

그럼에도 일부 사람들은 그 명백한 조짐들에 눈을 감는다. 보수의 본산인 C일보를 때려잡는 게 중요한데 왜 윤지오씨한테 딴지를 거느냐는 게 그들의 일관된 주장이다. 심지어 그분들은 윤씨의 거짓말을 언급한 이를 C일보의 하수인으로 취급하기도 했다. 그분들의 집착은 결국 고소를 당한 윤씨가 내내 한국에 있던 어머니 핑계를 대며 캐나다로 도망가버린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윤씨가 C일보 사주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며, 그로 인해 고 장자연씨의 진실을 규명하는 게 더 힘들어졌다는 것도 그분들에겐 논외다. 여전히 윤씨를 신봉하는 그분들께 말씀드린다. “기대해 주세요. 당신들이 있는 한 제2, 제3의 윤지오가 또 나올 거예요.”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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