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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올림픽을 틈틈이 재미나게 보고 있다. 경기의 승패에 몰입하여 일희일비하며 환호와 탄식을 오간다. 누구나 알다시피 올림픽은 선수들에겐 가장 큰 성공과 실패를 맛보게 해주는 장이다. 메달을 따면 금의환향하지만 따지 못하면 그 박탈감이 어마어마하게 크다. 그야말로 사활을 건 한판 싸움이니 지켜보는 이들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 돌 하나를 어떻게 던지느냐에 따라 앞서 계산했던 온갖 수와 자리싸움의 운명이 결정 나는 컬링 경기를 비롯해 대부분 건곤일척의 승부다.

아나운서와 해설위원의 설명을 듣다보면 선수들마다 사연이 많다. 소속 국가가 제재를 받아 개인 자격으로 참가하고 ‘러시아 출신’이라 불리는 선수들을 비롯해 마음고생이 심했던 여자 하키 선수들이 한 골 넣고 서로에게 달려드는 모습은 그 무게감이 남다르다. 일본의 한 피겨 선수는 동일본 대지진으로 집과 연습장이 사라져 전국을 떠돌며 연습했다고 하고, 눈 한 자락 내리지 않는 지역의 선수들이 꼴찌를 하고도 엉덩이를 흔들며 세리머니를 하는 모습에 웃음을 짓기도 한다.

4년 전 러시아 소치 올림픽에서도 세 번의 실격을 기록했던 영국 엘리스 크리스티(뒤)가 13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500m 결승에서 치열한 자리 다툼 도중 미끄러지고 있다. 역주한 한국 에이스 최민정도 2위로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실격 처리되면서 메달이 무산됐다. 강릉 _ 연합뉴스

유독 이번 올림픽에선 선수들의 희로애락에 눈길이 갔다. 특히 경기가 끝난 직후 경쟁하던 선수끼리 서로 안아주며 격려하는 장면이 많았다. 스켈레톤 경기는 1차전부터 4차전까지의 기록을 합산해 총점으로 승부를 가린다. 마지막 3차전까지 총점을 매겨 가장 순위가 낮은 20위부터 4차전을 시작하는데 경기를 마친 선수들은 포토라인에 서서 다음 선수의 경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 만약 다음 선수가 기록을 깨면 자동으로 퇴장하고 깨지 못하면 계속 남아 있는 구조다. 기록이 낮은 순으로 타기 때문에 주인공이 계속 바뀐다. 포토라인에 선 이들은 경쟁자가 나보다 못 타주길 바랄 것이다. 그런데 마음은 그렇더라도 행동은 그렇지 않았다. 자신의 기록을 깬 선수 앞으로 다가가 힘껏 포옹하며 축하해주고 퇴장한다. 나는 늘 보던 이 모습이 이번에는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다. 경쟁과 축하의 너무나도 급격한 전환이면서도, 지극히 자연스러워 신선하게 다가오는.

스노보드 경기에서는 상대방이 타다가 넘어지든, 신기록을 세우든 상관없이 얼싸안고 우는 모습이 경쟁자라기보다는 생사를 함께한 동료를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눈을 배경으로 해서인지 알피니스트들의 진한 우정이 떠오르기도 했다. 상대가 나보다 못하기를 애타게 바라는 마음에서는, 그 상대가 자신의 기록을 넘어섰을 때 실망하거나 화가 나야 정상이다. 실제로 우는 선수도 있었지만, 그렇더라도 눈물 콧물을 닦으면서 진심으로 다가가 꽉 안아주는 모습에서는 어떤 경이감까지 느껴졌다.

최민정 선수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보다 열심히 훈련한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메달을 걸어주겠다.” 그만큼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의미다. 올림픽 무대에 서기 위해 저 선수들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 경기를 끝마치기 무섭게 눈물부터 터지는 것에서 고통과 인내의 시간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지켜보는 관중도 이럴진대 같이 뛰는 선수끼리는 어떻겠는가. 자신이 겪은 그 고통을 이겨낸 선수가 선물을 받는 것임을 알기에 그렇게 일거에 찾아온 실망과 좌절 속에서도 나보다 잘 뛰고, 잘 달린, 운도 좋은 선수에게 다가가 진심으로 안아줄 수 있는 것일 테다.

아마 많은 이가 이런 장면에서 감동을 받을 것이다. 아시아인 최초로 썰매 종목에서 금메달을 땄다는 윤성빈 선수가 관중을 향해 큰절을 올리는 모습도 같은 국가, 같은 민족으로서 명절이라고 저렇게 절을 하는구나 하는 마음에 무한한 위로와 공감을 자아내는 것이다. 그런데 그 찰나의 화면에 정치인의 웃는 얼굴이 한번 스쳐 지나갔다가 또 한번 나오고 그러다가 또 비쳤을 때 고양됐던 감정은 급속히 싸늘해질 수밖에 없다.

일반인의 접근이 허락되지 않는 특별한 공간에 특별한 대우를 받고 특별한 순간의 기쁨을 나눠 갖기 위해 저렇게 나왔다는 사실이 현 정부와 여당의 지지자인 나로서는 좀 많이 안타까웠다. 왜 그 욕심을 억누르지 못했을까. 왜 저렇게 어리석은가. 정치의 생리와 정치인의 존재론적 특징을 짐작하면서도 아쉬운 마음을 떨칠 수 없다.

이번 올림픽에서 무수한 포옹과 눈물을 지켜보았다. 서로의 처지를 나누는 사람끼리 이심전심 포옹하는 이 모습이 우리 사회에 전해주는 메시지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포옹은 진심을 담아 타인 지향적으로 하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말이다. 자신의 성적 욕심을 채우기 위한 자기 지향적 포옹이 미투 운동의 불을 붙이고 있는 현 상황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역설적 교훈이 아닐까.

<강성민 |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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