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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칠곡에서 발생한 계모의 8살 어린이 학대 살해 사건이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친아버지도 수년간 지속된 학대에 공범으로 가담했고, 피해 어린이가 사망하자 같은 피해자인 12살 언니로 하여금 ‘동생을 때려서 죽게 했다’는 ‘허위 자백’을 하게 했다는 사실이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그동안 피해 어린이의 멍과 상처를 보다 못한 선생님과 사회복지사가 수차례 신고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국가와 관련 기관이 이 끔찍한 살인을 막지 않았다는 사실을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어린이를 부모의 소유물로 보는 전근대적 인식과 사회에 만연한 폭력 등의 근본적 원인과 함께 학계와 시민사회의 오랜 요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동학대 방지법’ 등 꼭 필요한 법과 제도적 장치를 갖추지 않은 정부와 국회의 잘못도 따져 물어야 한다. 여전히 ‘부모의 체벌’을 당연한 권리로 인식해 아동학대 범죄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의 무지 역시 질타받아야 한다. 유영철, 정남규, 강호순, 지존파. 한국사회를 충격에 빠트린 연쇄살인범들이다.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모두 ‘아동학대’ 피해자들이다. 이들뿐인가? 웬만한 강력범죄자들은 물론이고 세상과 사람들을 아프고 슬프게 만드는 나쁜 권력자들 중에 아동학대 피해자 아닌 자가 거의 없다. 다 이유가 있다. 눈에 띄는 신체적 학대뿐 아니라 마음을 멍들게 하는 정신적, 정서적 학대와 언어적 학대가 지속되면 피해 아동의 대뇌 전두엽 발달에 지장을 준다.

2013년 11월 미국 위스콘신대학 연구팀은 아동 학대 피해아동들과 학대를 당하지 않은 아동들의 대뇌 영상 촬영 결과 비교 연구에서 충격적인 차이를 확인했다. 학대 피해 아동들의 대뇌는 전두엽과 해마 영역간 연결이 손상되어 있었고, 그 결과 장기적으로 ‘불안’과 ‘공포’ 감정을 조절하는 데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는 것이었다. 성인 우울증이나 불안장애의 대부분이 아동학대 피해 경험 때문이라고 추정할 수 있는 근거다.

1991년 마르고 리베라의 ‘다중인격장애’ 연구에서는 총 185명의 다중인격장애 환자 중 98%가 어린 시절 아동학대 피해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 연방수사국(FBI) 보고서는 부모를 살해한 존속살해범 300명 중 90%가 아동학대 피해자였고, 피학대 후유증이 살인의 원인이었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정도면 아동학대야말로 ‘사회악의 근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와 정부가 뒷짐 지고, 이웃과 학교가 눈 감는 가운데 우리 이웃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비명과 숨죽이는 울음소리는 바로 우리 사회가 썩고 병들어 가는 소리에 다름 아니다.

울산시청 앞에서 아동학대 신고의자를 처벌하지 않기로 한 울산시 규탄 집회가 열리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한국전쟁이 끝난 뒤 전쟁고아들의 ‘관리’를 위해 1961년에 제정했던 아동복리법을 개정한 아동복지법에 ‘아동학대’ 금지 및 처벌 규정을 끼워넣어 운영 중인 우리나라의 아동보호제도는 허술하다. 민간기관인 아동보호전문기관에 권한이나 집행력도 주지 않은 채 책임만 부여해 아동학대 문제를 전담시키고 있다. 심각한 학대가 확인돼도 대부분 친권과 양육권에 막혀 단기 보호밖에 제공할 수 없다. ‘어린이는 나라의 보배’라며 세계 최초로 어린이날을 제정한 소파 방정환 선생의 나라가 맞는지 의심스럽다.

1979년 스웨덴에서 부모의 자녀 체벌을 ‘범죄’로 규정하고 법으로 금지했을 때 국민의 70%가 이 법에 반대했다. 하지만, 35년이 지난 오늘 90%의 스웨덴 국민이 체벌금지법을 지지한다. 스웨덴의 사례를 따라 프랑스를 제외한 모든 유럽연합(EU) 국가에서 부모의 자녀체벌을 법으로 금지했다.

스웨덴 국민들이 우리에게 충고하는 듯하다 “2014년 대한민국은 1979년 스웨덴과 비슷하군요. 강력한 아동학대 처벌법부터 제정하고 튼튼한 제도부터 구축하세요. 부모의 인식은 그 뒤 35년간 천천히 바뀔 것입니다”.

스스로를 보호할 능력이 없는 어린이들을 잔혹한 학대자들의 손아귀에 방치하는 나라, 선진국을 운운하지 마라.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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