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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유라고 대는 변명이 수긍할 수 없다면 핑계로 여겨집니다. 구차스러운 변명을 늘어놓거나 잘못을 다른 탓으로 돌릴 때 하는 말 ‘핑계 없는 무덤 없다더니’와 함께요.

인간 삶의 최종 결과는 죽음입니다. 그리고 모든 죽음에는 자연사든 병사, 사고사든 다 이유가 있는 법이지요. 그리고 그 어떤 죽음이든 마지막 숨과 눈길 한 번이 아쉽기 마련일 것입니다. 그러니 ‘여든에 죽어도 구들동티에 죽었다 한다’는 말도 나왔겠지요. 금기를 어겨 귀신을 노하게 해 입는 해를 ‘동티’라 하고, 아무 이유 없이 죽은 것을 놀림조로 ‘구들동티’라고 합니다. 구들방에 가만히 앉아서 받은 동티 탓으로 죽었다는 말이지요. 그렇게 장수를 누리고도 구들동티를 탓할 만큼 누려온 삶에 대한 미련은 질긴 법입니다.

결과든 잘못이든 많은 이들이 여태 쌓아온 걸 잃지 않으려고 변명과 핑계를 댑니다. 그래서 ‘도둑질하다 들켜도 변명을 한다’는 속담도 있지요. 현행범으로 딱 걸린 상황에도 어떻게든 모면하려 합니다. ‘취해서 그만’ ‘야하게 입어서 그만’, 아니면 없는 정신질환까지 들먹입니다. 몇 년 전 영국 법원은 18세 소녀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사우디 재벌의 ‘넘어졌는데 우연히 성기가 삽입되었다’는 변명을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했다지요.

최근 어느 현직 판사가 지하철에서 여성의 허벅지를 몰래 촬영한 혐의를 받고 불구속 기소됐습니다. 촬영한 석 장의 사진과 목격자 진술도 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카메라 앱이 실수로 작동된 것 같다’고 해명했다 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지하철 펑크 나서 지각하는 일도 심심찮게 생기는데요, 뭐. 분명 믿어드릴 겁니다. 같은 판사님이시니까요.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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