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지나친 것은 모자람과 같다.” <논어>의 이 주장처럼 지나친 욕심은 많은 불행을 불러온다. 특히 정치에서 그러하다. 지나친 욕심에 의한 ‘과욕의 정치’는 개인, 나아가 공동체를 불행하게 할 가능성이 크다.

임기말이 다가오면서 줄줄이 쇠고랑을 차고 있는 이명박 정부 실세들의 모습은 과욕의 정치의 비극을 잘 보여주고 있다. ‘미래 권력’인 박근혜 진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새누리당의 경선 룰 개정 요구를 일축하는 등 일방통행으로 나가고 있는 과욕의 정치는 박 의원의 불통 이미지를 강화시킴으로써 그에게 오히려 해가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민주통합당도 마찬가지다. 일부 세력의 과욕이 이해찬 당 대표, 박지원 원내대표라는 밀실 담합을 야기했고 이는 지난 당 대표 선거에서 보듯 역풍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밀실 담합에 대한 부정적 민심에도 불구하고 일부의 정파논리에 의한 모바일투표 몰표 등으로 이해찬 의원에게 역전승을 가져다줬지만 이 같은 과욕도 오는 대선에서 부정적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통합진보당 전국운영위원회의 두 모습 ㅣ 출처:경향DB

과욕의 정치를 더욱 절감하게 만드는 쪽은 진보세력, 즉 진보정당들이다. 진보신당은 통합진보당과의 통합을 거부하고 과욕을 부리다가 당이 해체되는 수모를 당하고 말았다. 통합진보당도 다르지 않다. 경기동부연합을 중심으로 한 당권파는 그간의 제3자를 내세운 ‘대리통치’를 마감하고 자신들이 직접 나서 ‘직접통치’를 하기 위한 과욕을 부렸다가 국민적 비판을 받고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통합진보당의 쇄신파 역시 과욕을 부리다가 당 쇄신의 기회를 날려버릴지 모르는 위기에 처해 있다는 점이다. 통합진보당 사태는 비상식적인 패권주의와 반민주주의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쇄신은 이 문제에 초점을 맞췄어야 했다. 아니 이와 함께 당권파의 여러 언행에 의해 종북주의가 엄청난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된 이상, 민주주의 문제와 종북주의 문제로 국한시켜야 했다. 그랬다면 현재 진행 중인 통합진보당의 당권 경쟁은 반민주적이고 ‘종북’적인 세력 대 민주적이고 ‘탈종북’적인 세력의 대결, 즉 ‘비상식’ 대 ‘상식’의 대결로 나갔을 것이다.

그런데 쇄신파가 과욕을 부렸다. 즉 쇄신파는 이 같은 패권주의와 종북주의 문제만이 아니라 재벌정책, 주한미군 문제 등 당의 기본적 정책 전반을 문제 삼고 나온 것이다. 한마디로,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당을 이번 기회에 완전히 자신들이 바라는 노선으로 바꾸기 위해 그동안 달갑지 않게 생각했던 모든 문제들을 들고 나온 것이다. 물론 주한미군 철수와 재벌 해체 등 통합진보당의 여러 강령들은 충분히 논의할 가치가 있는 주제들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같은 논쟁을 할 때가 아니다. 이 문제까지 함께 뭉뚱그려 논쟁을 하는 경우 반민주적인 종북세력 대 민주적인 탈종북세력의 대결, 비상식 대 상식의 대결이라는 대립구도가 다른 논점들에 묻혀 희석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에는 패권주의와 종북주의 문제만을 집중적으로 논의해 심판을 받고 다른 문제들은 시간을 두고 논의해 갔어야 했다.

그러나 쇄신파가 이 모든 문제들을 들고 나오면서 당권 경쟁이 원래의 의미인 상식 대 비상식의 대결이 아니라 당의 변혁적 성격(재벌 해체, 주한미군 철수 등)을 지키려는 ‘변혁노선’과 당을 국민참여당식으로 우경화시키려는 ‘개량노선’의 대결구도로 보이게 만들고 말았다. 다시 말해, 쇄신파의 과욕의 정치 때문에 엉뚱하게도 낡은 당권파는 개량주의로부터 당을 지키려는 변혁주의자로, 쇄신파는 당을 우경화시키려는 개량주의자로 보이게 만들고 말았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한 경향신문의 특집이 보여주듯이, 많은 진보적 학자들은 패권주의와 종북주의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면서도 재벌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 등에 대해서는 오히려 쇄신파의 쇄신안에 부정적이었다. 쇄신파의 과욕의 정치가 이들까지도 당권파를 지지해야 할지, 쇄신파를 지지해야 할지 고민에 빠지게 만들고 말았다. 다시 강조하지만,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