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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현대 사회과학의 중요한 쟁점 중의 하나는 의도와 전혀 다른 결과가 역사를 움직이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이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선후보의 TV토론이 좋은 예이다. 이 후보는 대선토론이 지지자들을 위한 카타르시스의 장이 아니라 부동층을 설득해 유인하는 장이라는 것을 망각한 채,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나왔다고 공언하는 등 지나치게 공격적인 자세를 보였다. 그 결과 의도와는 정반대로 박 후보 당선의 일등공신이 되고 말았다. 이는 한 여론조사 결과 그의 공격적인 TV토론 태도가 보수표심 집결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된 것이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번 대선 결과에는 이 후보의 공격적 태도를 넘어서 한국진보정당의 문제점, 나아가 민주당과 진보정당이 추구해온 연합정치라는 보다 뿌리깊은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대선 직전 이 지면에 쓴 ‘김소연을 아시나요’라는 칼럼에서 나는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진보정당은 권영길 후보를 내세워 독자노선을 걸었지만 민주당은 승리했고 이 같은 독자노선이 진보정당 발전에 기여했을 뿐 아니라 정치공학적으로도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승리에 오히려 도움을 줬다고 주장한 바 있다. 즉 권 후보가 반한나라당 지지층 중 3% 정도의 지지를 갉아먹었지만 그의 존재가 김 대통령과 노 대통령에 대한 색깔론을 중화시켜 이들이 3%보다 많은 중도적 표를 얻도록 도와줬다.


 

MBC 스튜디오에서 경제분야 TV합동토론을 시작 전 포즈를 취하는 세후보 (출처: 경향DB)



이와 관련, 주목할 것이 있다. 권 후보는 민주당과 선거연합이 아니라 독자노선을 걸었을 뿐만 아니라 TV토론에서도 보수적인 이회창 후보만 공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김대중, 노무현 후보도 공격함으로써 이들이 보수세력이 공격하듯이 진보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줘 중도층을 안심시켰다. 그러나 이정희 후보는 전혀 다른 전략을 썼다. 문재인 후보는 공격하지 않고 모든 화력을 박근혜 후보에게 집중함으로써 보수층과 중도층에게 “문재인과 이정희는 한패”라는 인식을 주고 말았다.


이 같은 등식이 더욱 문제가 된 것은 이정희 후보와 현재 통합진보당에 남아있는 구민주노동당 주류세력이 북한의 세습 비판거부, 북한 핵개발 옹호 등으로 ‘종북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고 특히 이 같은 문제들과 부정선거 등 도덕적 문제들이 지난해 통합진보당 사태로 국민들의 집중적인 비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뿐이 아니다. 이들을 비판하며 분당을 한 진보신당이 2010년 지방선거, 2012년 총선에서 독자노선을 걸었던 것과 달리 이 후보와 민주노동당은 이 두 선거에서 민주당과 손을 잡고 선거연합을 한 전력이 있다. 물론 민주당은 통합진보당 사태가 터져 나오고 통합진보당이 분당을 하자 이번 대선에서 종북이미지가 없는 심상정 진보정의당 후보와는 손을 잡으면서도 종북이미지가 강한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후보와는 끝까지 정책연합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동안 이정희 후보와 가졌던 선거연합의 전력, 그리고 TV토론에서 보여준 이정희 후보의 토론전략 등으로 중도적 유권자들에게 민주통합당이 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설득시키고 이들을 견인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게다가 북한이 같은 ‘세습권력’인 박근혜 후보를 도와주고 싶은 듯 선거 직전에 로켓까지 쏘아 올렸으니 중도층은 더욱 박근혜 쪽으로 쏠리고 말았다. 다시 말해, 이번 대선결과에 북한의 모험주의, 한국 ‘다수파’ 진보정당의 종북주의, 이들과 민주당의 연합정치노선도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민주당은 민주노동당과의 선거연합을 통해 2010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연합정치의 축복’이었다. 그러나 종북적 이미지의 진보정당과의 연합정치 전력은 대선에선 오히려 ‘연합정치의 저주’가 되고 말았다. 이번 선거를 통해 우리는 두 가지를 배워야 한다. 우선 진보정당은 종북적 노선을 벗어나고 새로운 21세기적 진보정당으로 변신해야 한다. 또 민주당과 같은 자유주의정당과 진보정당은 낡은 민주대연합론에 기초한 연합정치 만능론을 벗어나 어떤 정당과 언제, 어떤 연합을 할 것인가 엄밀하게 다시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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