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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철 |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국민행복과 희망의 새 시대’를 국정비전으로 내건 박근혜 정부가 출범했다. 이전 정부들의 오류와 한계를 극복하고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그런데 ‘벌써’ 비판의 목소리가 들린다. 무엇보다 대통령직인수위가 발표한 국정목표와 전략 및 과제를 보면서 그렇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운영의 기초로 삼겠다고 한 ‘국정 구상안’에는 대선 때 약속했던 경제민주화와 복지정책이 보이지 않고 후퇴했다. 경제민주화란 표현은 찾아볼 수 없고, 4대 중증질환 국가보장과 기초노령연금 정책 등의 적용범위와 시기가 축소되고 늦춰졌다. 또 박 대통령이 지명한 내각과 청와대 인사 중 경제민주화와 복지에 정통하거나 친화적인 인물도 보이지 않는다.


인수위 측의 항변은 이렇다. 경제민주화란 표현을 안 썼다 해도 그 핵심 내용이 국정과제로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가령 국정과제로 경제적 약자의 권익보호와 대기업의 사익편취 근절 등이 명시되어 있음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또 복지정책이 후퇴했다는 것은 애초의 공약이 잘못 알려진 것에서 비롯된 오해라는 것이다. 그 예로 4대 중증질환 국가 보장에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료 같은 3대 비급여 항목은 원래부터 국가보장 대상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은 경제민주화가 국정과제로 녹아있다며 인수위를 거들기도 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시기 경제민주화를 주창하는 데 조력했던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인수위에 경제민주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국정 구상안과 항변이 나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례 (경향신문DB)


이러한 논란을 어떻게 봐야 할까? 과연 한 측의 주장대로 경제민주화의 실종이라고 봐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한 측의 항변처럼 국정과제로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당연한 현상이라고 봐야 하는 것일까?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작금의 논란의 적실성 여부를 평가하는 기준이 필요하다. 필자는 그것이 경제민주화의 ‘본질’이라고 본다. 경제민주화의 본질은 부의 양적 배분이 아니라, 그 부를 관장하고 배분할 권리를 누가 보유하고 행사하느냐에 있다. 경제민주화를 위한 정책의 가장 중요하고 직접적인 이해당사자, 즉 다수 국민들(특히 사회경제적 약자)이 자신의 행복추구 기회를 갖기 위해 주요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그들이 정책을 실제 결정하는 주권자가 되는 것이 경제민주화라는 것이다.


하지만 작금의 논란은 경제민주화를 정부가 국정목표로 표현했는지, 또 경제민주화를 국정목표와 전략과제 중 어디에 배치했는지만을 쟁점으로 삼고 있다. 이 쟁점들에는 본질이 담겨져 있지 않다. ‘피상적’ 논란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표현과 배치는 중요하다. 표현은 한 측이 특정한 정신과 관점에 기초해 어떤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가겠다는 의지를 다른 측에 공표, 전달하기 위한 행위이다. 배치는 그 문제를 다른 문제와의 관계에 비추어 어떤 순서와 비중으로 다룰 것인지 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그런 표현과 배치를 이미 했다. 경제민주화를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를 위해 원칙이 바로 선 시장경제질서의 확립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박근혜 정부는 경제민주화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 국민을 경제민주화의 주체가 아니라 수혜의 대상으로 설정해놓고 있는 것이다. 경제민주화를 중시한다고 자처하는 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니 경제민주화 본질의 왜곡이 아니라, 단어를 직접 사용했는지에 초점을 맞춰 표현의 가시성만을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경제민주화를 부의 양적 배분 문제로만 보면 재원확보를 이유로 다시금 성장 문제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경제민주화는 경제상황이 안 좋으면 약화 혹은 중단될 운명에 처하게 된다. 하지만 경제민주화는 국민이 직접적 주체가 돼 경제상황의 좋고 나쁨을 떠나 민주주의 정치가 추구하고 실현해야 할 보편적 과제다. 경제민주화 논란은 여기서 다시 시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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