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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의무를 소홀히 해 얻는 이익보다, 재해를 일으켰을 때 받는 불이익이 적다면, 기업의 철저한 안전관리는 사실상 기대하기 어렵다.” 고 노회찬 의원이 2017년 4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최초로 입법발의하며 밝힌 입법취지다.

2019년 한 해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는 2020명이라고 한다. 산업재해로 처리조차 되지 않은 억울한 노동자 죽음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노회찬 의원안이 통과되었더라면, 몇십명, 몇백명은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국회 앞마당에선, 산재사고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단식농성하며 자식을 죽이고 그 부모까지 거두려는 잔인한 세상을 향해 호소한다. “다시는 우리같이 고통받는 가족이 있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죽지 않아야 한다.”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지지 않는 상태에서는 계속 누군가는 죽을 겁니다.”

노동자들은 하루 6명꼴로 죽어 나간다. 떨어져 죽고, 끼여 죽고, 부딪혀 죽고, 깔려 죽고, 백혈병으로 죽고, 이름 모를 병으로 죽는다. 그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원인은 하나다. 노동자의 목숨보다 자본의 이윤을 더 중시하는 기업 경영방식 때문이다. 이윤극대화 경영방식을 제재하고 노동자 희생을 막기 위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절실하다는 점에 이견이 없기에 21대 국회 들어 다수의 법안들이 제출되었다. 하지만 12월28일 발표된 정부법안은 노회찬 의원안과 강은미 의원안은 물론 민주당 박주민 의원안보다도 훨씬 더 후퇴한 것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핵심은 하급 관리자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최고경영진이 포괄적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다. 노동자는 공장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철저하게 지시와 규칙에 따라 움직인다. 작업시간, 휴게시간, 작업량, 작업속도, 운전 기계설비, 작업도구, 작업방식 중 어느 것 하나 노동자의 자율성에 온전히 맡겨진 것은 없다. 노동자가 직무수행 과정에서 혹은 그 결과로 사고를 당하게 된다면 경영책임자의 포괄적 안전·보건조치 의무 불이행을 의심하게 되고, 특히 반복적 사고 발생의 경우 인과관계를 추정할 수 있다. 사회과학 질적방법론의 기초를 이루는 일치법과 차이법의 접근법이 그러하다. 그러나 정부법안은 인과관계 추정조항들을 모두 삭제하고 법인 이사들 가운데 안전보건 업무 담당 이사에게만 책임을 묻도록 했다.

정부안은 산업재해 사망자의 60%를 점하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법적용 4년 유예 규정에 더해 50인 이상 10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법적용 2년 유예 조항을 추가했다. 뿐만 아니라 제3자에게 임대·용역·도급을 행한 원청이 부담하는 안전·보건 조치의 공동의무도 “시설, 설비 등을 소유하거나 그 장소를 관리하는 책임이 있는 경우”로 한정하여 원청업체의 책임범위를 대폭 축소했다. 결국 원청 대기업은 하청 중소영세기업의 중대재해 발생에 대한 책임과 처벌에서 벗어나기 쉽게 되었고 원·하청 고리의 말단 중소영세기업의 중대재해는 막기 어렵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법 위반 시 부과되는 징벌적 손해배상액도 5억원 이상 벌금에서 10억원 이하 벌금으로 하한제 대신 상한제 방식으로 부담을 경감했다.

이쯤 되면 경제단체 의견을 대폭 수용하는 수준을 넘어 가히 경제단체안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다른 이름은 ‘기업살인법’이다. 살인자처벌법을 만드는 데 살인자 의견을 경청한 꼴이다. 정부·여당의 귀에는 노동자와 산재사망자 유족들의 울부짖음이 들리지 않는 걸까?

국내 코로나19 희생자가 800명이 넘었다. 정부 책임자는 매일 아침 전날의 확진자와 사망자 숫자를 발표하며 망자들의 명복을 빈다. 억울한 죽음에 정부 책임자가 명복을 비는 것은 올바른 자세다. 노동자들은 매년 그 몇배씩 죽어나가건만 정부 책임자가 산재사망자 숫자를 발표하며 명복을 빌어주는 것, 본 적 없다. OECD 최고수준의 산재사망률 오명은 그냥 얻어진 게 아니다. 기업의 이윤 탐욕과 정부의 무책임이 빚어낸 ‘인재(人災)’다.

인류역사상 가장 잔악했던 이반4세도 삶을 마감하기 전 자신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명부 ‘시노빅’을 만들어 매일 새벽 몇시간씩 죽은 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고 그를 위한 기도문을 적어가며 기도했다. 폭군이건 성군이건 최고통치자의 책임은 무한하다.

우리의 대통령은 임기 마감 전 산업재해 사망자들의 이름을 부르고 그 한 분 한 분을 위해 명복을 빌어주면 안 될까, 단 한 번만이라도. 산재사망자들이, 곡기를 끊은 유족들이, 내일의 희생자가 될지도 모를 오늘의 노동자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은 그런 진정성 아닐까?

조돈문 노회찬재단 이사장·가톨릭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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