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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은평구청에서 코로나19로 바뀐 삶의 애환을 나누고 서로를 격려해 주는 주민토론이 열렸다. 긴장, 낯섦, 두려움, 외로움 등의 감정이 뒤섞인 경험담이 이어졌다. 집안 사정에 따라 발생하는 여가의 차이도 확인할 수 있었고, 세상과 삶에 겸허함을 느낀 이들도 많았다.
입으로 불어 소리를 내는 목관악기 전공 여대생은 비말 때문에 과외가 끊겨 컴퓨터 프로그램을 배우기 시작했고, 동네식당을 운영하시는 분들은 도시락 사업을 시작했다. 주민들 삶의 변화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이었다. 지방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을 살펴보면 지역방역, 주민건강, 민생지원 등 크게 3가지로 구분된다. 특히 집안에 갇혀 있는 어린이를 위한 ‘집콕 선물꾸러미’와 저소득층을 위한 ‘위생용품 선물꾸러미’ 배달, 어르신들의 하루하루 건강을 점검하는 행복 콜센터 운영, 비대면 독서 지원 프로그램인 ‘방구석도서관’ 사업, 헌혈 및 착한 소비 캠페인, 천마스크 제작 자원봉사, 모두 지방정부의 작품이다.
이번 코로나19 대응 과정을 통해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지방정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증명됐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본 결과, 앞으로 지방정부가 해야 할 일은 대략 6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시민의 연대와 협력을 끌어낼 지방정부의 리더십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선진국으로 불리는 국가들이 사태 초기 우왕좌왕했던 까닭은 우리보다 기술력과 경제력에서 뒤처졌기 때문이 아니다. 시민의 연대와 협력은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둘째, 보육, 요양, 복지 등이 공존하는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다양성이 존재하는 도시는 사회에 생동감을 불러오고 지속 가능성을 가져올 것이다. 셋째, 크고 작은 커뮤니티 지원으로 공동체의 면역력을 강화해야 한다. 비대면은 물질에서 문화로 가치가 이동하는 과정이다. 같이 밥 먹고, 감기에 걸리면 약도 사다 주고, 생일도 함께 축하해 주는 커뮤니티가 중요하다. 넷째, 주민의 세세한 변화에 신속하게 반응할 수 있는 지방정부의 조직체계가 필요하다. 다섯째, 주민의 숙의와 토론으로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강한 민주주의가 준비되어야 한다. 지역주민의 공론장을 만들고, 주민들의 지분참여와 이익참여 등을 적극적으로 도모한다면 님비현상 대신 시설이나 사업 유치를 환영하는 현수막이 걸릴 것이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담론운동을 강하게 추동해야 한다. 우리가 믿고 있던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도 기후위기와 질병을 도시로 유입시키는 한계를 드러냈다. 6가지 과제는 다시 첫 번째 고리로 연결된다. 담론운동엔 지방정부의 리더십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강한 지방정부가 강한 민주주의를 만든다.
다수의 전문가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특징을 과거와의 단절, 거대 전환, 가속화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어쩌면 현상을 진단하는 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미래를 예측하는 것에 익숙하다. 그러나 지금은 미래를 개척해야 할 때이고, 지향할 가치는 ‘복원’일 것이다. 복원을 위해 지속 가능하지 않은 것은 무엇이고, 방향을 수정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또 예상보다 빨리 찾아올 미래는 무엇인지 살펴봐야 한다. 포스트 코로나는 경제적 가치에 가려졌던 인간, 자연, 평등, 상생 등 사회적 가치를 다시 복원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
<최정묵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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