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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첫 만남은 작은 시민단체의 후원주점이었습니다. 한국에 살고 있는 이주민들에게 다양한 소식을 전해주는 이주민방송의 재정을 마련하기 위한 일일주점이었지요. 그날 국적별로 안주가 다양했는데 그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던 것이 틴툰 선생님이 만드신 미얀마 전통 닭튀김이었습니다. 닭도 맛있었지만, 그보다 처음 만난 저에게도 쉴 새 없이 질문과 이야기를 하셨던 수다스러운 선생님의 모습이 더 기억에 남았습니다. 특히 양손과 시선, 표정을 능숙하게 사용하며 이야기를 이어가는 모습은 듣는 누구나 어느새 이야기 속으로 쑥 빨려 들어가게 했습니다.

그 뒤로 인연이 이어졌습니다. 저는 주로 어려움을 겪는 이주민들의 법률상담을 소개받았고, 선생님께는 사건과 관련된 통역이나 인터뷰, 강연을 부탁드리곤 했습니다. 함께했던 일이 그래서였을까요. 지금 와서 돌아보니 선생님과 했던 이야기들이 늘 무거운 내용이었던 것 같아 아쉽네요. 선생님은 단단하고 생기 있는 목소리로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원칙들을 이야기해 주었고, 그럴 때마다 어떻게 일을 좀 줄여볼까 하고 꾀를 부리던 제 생각을 여러 번 고쳐먹기도 했습니다.

1994년, 채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해 인천의 주물공장을 시작으로 오랫동안 한국 사람들이 외면했던 3D산업 현장에서 일해온 이주노동자이자, 한국에 머무는 미얀마 동료들과 군부의 독재를 비판하고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버마행동’을 결성하여 활동해온 깨어 있는 시민이었습니다. 늘 성실하게 배우려 노력했고, 그 배움을 주변에 나누어 주려고 했습니다. 7년이나 걸린 소송 끝에 난민으로 인정받고서도, 이주민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는 한국에서 묵묵히 공존의 씨앗을 뿌리는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이주민방송 대표와 이주민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는 등 우리 사회가 이주민을 제대로 이해하고 관계 맺을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한국 사회가 선생님께 큰 빚을 진 셈입니다.

2010년 군부가 통치하던 미얀마에 민간정부가 들어서고, 해외 체류 중인 반체제 인사들의 귀국이 가능해지면서 오랜만에 고향 땅에 방문했다가 여러 사정과 코로나19 때문에 하늘길이 막혀 한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신문을 통해 보았습니다. 미얀마에서 낡고 오래된 마을 우물을 사람들과 함께 고쳐낸 이야기를 보면서는 여전하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3월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이후에는 걱정하는 마음으로 SNS에 올라오는 소식을 보았습니다. 얼마 전까지 군부를 피해 온 피난민을 지원하는 활동과 함께, 코로나19에 무방비로 노출된 미얀마에 산소발생기를 지원하는 사업에 애쓰셨다고 들었습니다.

얼마 전 갑작스러운 부고를 들었습니다. 코로나로 의심된다고 했습니다. 믿기 힘든 소식에 너무 슬펐습니다. 소중한 친구이자, 보석 같은 활동가를 떠나보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작은 분향소를 마련했고, 함께 슬퍼하며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네팔에서 별이 된 미누 선생님 생각도 났습니다.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는 소중한 사회적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현장에서 싸우고 있는 이주민 활동가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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