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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세상읽기

아재와 노땅

opinionX 2019. 12. 6. 14:35

청년에게 진보는 아재요, 보수는 노땅이다. 둘 다 청년을 가르치려 드는데 ‘진보아재’의 설교는 거짓 위선으로 비치고 ‘보수노땅’의 훈시는 아예 헛소리로 들린다. 진보아재가 잘하는 거라곤 뒤늦게 헛웃음 나오게 하는 말장난 개그뿐이요, 보수노땅이 내세울 거라곤 남들 다 먹는 나이밖에 없다. 진보아재는 정치민주화한답시고 일상의 악습에 젖어들었고, 보수노땅은 경제성장한답시고 인간의 염치를 놓아버렸다. 자기들은 다르다고 항변하는데 서로 욕하고 싸우면서 닮아갔다. 작은 일상도 도덕으로 재단하는 진보아재가 큰 염치를 잃어가니 분노가 치밀고, 대놓고 아랫사람 깔아뭉개는 염치없는 보수노땅이 일상의 악습을 바꾸자고 하니 꼴불견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현실 권력을 두고 다투는데 마치 누가 먼저 소멸하나 내기하는 것 같다.

진보아재는 자칭 민주주의자다. 부당한 위계 없는 소통문화 만든답시고 틈만 나면 아재개그를 날린다. 비가 한 시간 오면? “추적 60분!”, 울다가 그친 사람은? “아까운 사람!”. 듣는 순간 ‘이게 뭐지?’ 어벙벙해지는데 집에 가서 누우면 뒤늦게 킬킬대느라 잠을 설치게 된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얻은 소득을 주로 해서 국민을 성장시키는 정책은? “소주성!” 최저임금 ‘쬐끔’ 올리면 국민이 성장한다는 아재개그를 날려 순간 ‘벙찌게’ 만들더니 지금까지도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헛웃음을 온 국민에게 안겨주었다.

보수노땅은 자칭 성장주의자다. 입만 열면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장광설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안되면 되게 하라”는 군인정신으로 이만큼 성장했다고 떠벌리는데 마지막에 가면 결국 “우리 때가 좋았지”로 끝맺는다. 군사작전하듯 주어진 목표를 최대한 빨리 달성하기 위해 초인적인 과잉 노동을 하다 보니 변화하는 세상과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은 말할 것도 없고 인간의 염치도 잃어버렸다. 온갖 갑질을 휘둘러대는데 부당하다고 항의하면 “다 원래부터 그래, 어쩔래?” 하며 배째라 나온다.

현재 진보아재는 철지난 수출주도성장을 다시 꺼내들고, 보수노땅은 거리를 점거하고 삭발 단식으로 독재 타도를 외치고 있다. 경제성장에 젬병인 진보아재와 권위에 찌든 보수노땅이 재벌총수와 민주투사 코스프레를 펼치고 있으니 쓴웃음이 절로 나온다. 좋게 봐주자면 상대방의 가치를 수용하려고 애쓰는 것 같아 참 가상하기는 하다. 그렇지만 자신이 잘하는 것부터 챙기는 게 먼저다. 진보아재는 정치민주화를 이루는 데 뛰어난 역량을 발휘해왔다. 그런데 현재 적지 않은 청년이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능멸하고 있다. 일부 극우 청년의 일탈이라며 무시하지 말고 민주주의가 왜 가치 있는 것인지 ‘진정성 있게’ 설득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면 삶이 얼마나 좋아지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보수노땅은 경제성장을 이루는 데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현재 적지 않은 청년이 경제성장의 결과를 비난하고 저주하고 있다. 일부 극좌 청년의 선동이라고 몰아붙이지 말고 경제성장이 왜 가치 있는 것인지 ‘성실하게’ 밝혀야 한다. 자식에게 세습질하는 것 말고 성장하려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납득할 수 있게 제시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 해도 청년이 스스로 이야기해야 한다. 들어주는 사람 없다고 위축되어 입 닫고 가만있으면 안된다. 나이가 젊다고 다 청년이 아니다. 이 땅에 새로운 이야기를 가져오는 자가 진짜 청년이다. 진보아재는 민주주의 이야기를 가져왔고, 보수노땅은 성장주의 이야기를 들여왔다. 이 이야기가 한계에 처했다면 당연히 이를 넘어서는 보다 호소력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한다. 평생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살아온 아재와 노땅에게 청년이 살아갈 새로운 이야기까지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그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의 이야기로 살아왔고, 그 덕분에 나름대로 정치민주화와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이 이야기가 낡아빠졌다면 청년은 여기에 빠져 허우적대지 말고 새로운 이야기를 창출해야 한다. 그러려면 청년이 곳곳에 모여 이야기를 주고받아야 한다. 누가 뭐래도 희망은 교육에서 온다. 무엇보다 청년이 주어진 현실 너머 가능한 세계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장으로 학교가 거듭나야 한다.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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