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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검사들의 전성시대다. 검찰밥을 먹어야 관가에서 행세깨나 하고 명함을 내밀 수 있는 시절이 되었다.

대통령실은 집사와 문고리부터 인사라인까지 검찰 출신이 꿰찼다. 고위공직자를 추천하는 인사기획관은 검찰 수사관 출신이다. 그를 보좌하는 인사비서관, 고위공직 후보자를 2차 검증하는 공직기강비서관은 검사 출신이다. 법률비서관도 검사 출신이다. ‘대통령의 집사’인 총무비서관, ‘문고리 권력’으로 통하는 부속실장은 검찰 수사관 출신이다. 행정부를 봐도 검사들의 전성시대가 여실하다. 법무부 장차관도, 법제처장도 검사 출신이다. 국정원 기조실장은 물론 총리 비서실장까지 검사 출신이다. 공정거래위원장도 검사 출신이 유력하다.

이게 다가 아니다. 지금 서초동에는 ‘공직 예비군’이 수두룩하다. 문재인 정부 때 윤석열 대통령과 코드를 맞추다 인사상 불이익을 받고 옷을 벗거나 검찰 권한을 축소하는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에 반발해 그만둔 검사가 적지 않다. 문재인 정부의 살생부가 윤석열 정부의 공신첩이다. 그중에서도 윤 대통령,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돈독한 관계이거나 각별한 근무연이 있어야 성골이다. 검사들이 한 장관의 검사 사직 글에 ‘충성 맹세’와 다를 바 없는 댓글을 경쟁적으로 단 것도 이런 시류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서초동 바닥에선 정권 실세 아무개 변호사 사무실에 의뢰인이 줄을 섰다는 얘기가 들린다. 관가에선 검찰 출신을 검찰과는 하등 상관없는 요직에 앉히려는 것을 겨우 말렸다거나 전직 검사인 아무개가 모모 자리에 오를 것이라는 식의 얘기가 무성하다. 군사정권 때 군 출신이 그랬던 것을 제외하고 특정 직역이 이렇게 요직을 쓸어담은 경우는 없었다. 집권당이 국민의힘인지 ‘검찰당’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윤 대통령 특유의 검찰관, 경험주의와 연고주의, 국정운영 전략이 아니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윤 대통령은 검찰주의자다. 검찰, 그중에서도 검사를 사회의 최고 엘리트 집단으로 친다. 그리고 바로 이 대목에서 윤 대통령의 능력주의와 검찰주의가 공명한다. 가장 유능한 집단인 검찰에서 사람을 뽑아 쓰는 게 무엇이 문제냐고 생각할 것이다. 성 비위 전력이 있는 데다 부적절한 성 인식이 담긴 시를 여럿 발표한 윤재순 대통령실 총무비서관, 서울시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에 책임이 있는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을 임명하고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윤 대통령은 한 번 써본 사람을 계속 믿고 쓴다. 이런 식의 경험주의, 연고주의 인사로 검찰에서 ‘윤석열 사단’이 만들어졌다. 현 정부에서 요직에 오른 검찰 출신은 대부분 윤 대통령과 연이 있다. 한동훈 장관과 함께 ‘윤석열 사단’의 투톱으로 꼽히는 조상준 국정원 기조실장은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사건 변호인이었다. 이완규 법제처장은 검찰총장 징계청구 사건에서 윤 대통령의 법률 대리인을 맡았다. 윤석열 정부 첫 공정위원장으로 유력한 강수진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검사 시절 같은 지청에서 근무한 윤 대통령과 ‘카풀 통근’을 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윤 대통령이 검찰 출신을 무턱대고 요직에 앉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검찰 출신을 비롯한 측근이 보란듯이 앉은 자리를 보면 여소야대에서 윤 대통령이 구상하는 국정운영 밑그림이 보인다. 윤 대통령은 한동훈 장관을 통해 법무부와 검찰을, 측근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통해 경찰을 틀어쥐었다. 공정위는 ‘경제 검찰’로 불린다. 국정원은 대공수사를 하고 민감한 정보를 다룬다. 법제처는 시행령 등 법령을 해석한다. 고위공직자 추천(복두규 인사기획관-이원모 인사비서관), 1차 검증(한동훈 법무부 장관), 2차 검증(이시원 비서관)까지 인사·검증 라인은 검찰 출신 일색이다. 비위 공직자에 대한 감찰(이시원 비서관)도 검찰 출신 몫이다. 인사, 수사, 정보, 조사, 감찰 등을 맡는 권력기관을 윤 대통령이 직할하면서 입법보다 시행령을 활용해 국정을 운영하려는 포석이라고 보아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윤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때만 해도 ‘설마’ 하는 사람이 많았다. 법무부 외청에 불과한 검찰 바깥으로 나가 복잡다기한 국정운영의 신세계와 마주할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윤 대통령은 도리어 검찰 시스템을 국정운영 원리로 확장하고 있다. 검찰공화국은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사실을 적시한 규정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되기까지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정제혁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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