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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마지막 학기를 보낼 때 다세대주택 반지하에서 살았다. 고시원 등지를 전전하다 월세로 들어갔다. 부엌이 딸린 방이라 밥을 지어먹어 좋았다. 작은 가구에 비디오비전도 들여놓아 즐거웠다. 친구들과 술 마실 공간이 생겨 신났다. 시험 기간 밤늦게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친구들이 들어와 자곤 했다.

습기 같은 건 대수롭지 않았다. 폭우가 쏟아지면 복도로 물이 들어와 차곤 했지만, 부엌까지 들어오진 않아 다행이라 여겼다. 내세울 일도, 부끄러울 일도 아니었다. 타지로 와 일하고, 공부하던 이들 대부분이 다세대주택에서 살았다. 한강을 조망하는 오피스텔에 살던 친구를 부러워하진 않았다. 그때 내 욕망의 크기는 같은 다세대주택 옥탑방으로 이사하는 정도였다.

24년 전 내 주거 형태를 떠올린 건 영화 <기생충>의 기택네 반지하 세트장을 복원(고양시)하고, ‘돼지쌀슈퍼’나 ‘동네계단’ 등지를 탐방 코스로 개발(서울시)한다는 소식 때문이다. 뭔가가 뜰 때마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는 ‘경제 활성화’란 명목으로 복원을 하니, 코스를 만드니 하며 관광 ‘상품’에 집착하며 호들갑을 떤다. 경제효과와 상품화에 집착하는 이데올로기는 현대 한국의 실제 연쇄 살인을 극화한 영화가 오스카를 타면 그 세트장을 복원해 전시하고, 살인 발생 당시 주민이 여전히 사는 그 현장을 탐방 코스로 만들 기세다. 130년 전 영국의 연쇄 살인마의 범행 현장을 찾아가는 한국판 ‘잭 더 리퍼 소굴’ 탐방 프로그램이라고 선전할지도 모를 일이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이 영화에서 교훈을 찾을 건 빈부격차·실업·주거 문제를 두고  어떤 제도를 만들어야 할지다. 예컨대 폭우에 대비해 배수시설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가난한 세입자 보호를 위해 어떤 정책을 내놓을지도 고민거리여야 한다.

다시 내 살던 반지하의 철제 대문을 쓱 열고 들어와 좁디좁은 반지하 복도에 고개를 내민 ‘투어리스트’를 상상해본다. 밥 한 공기 거저 더 퍼주던 인심 좋은 밥집으로 ‘이 동네 사람들의 먹거리’를 맛보러 온 탐방객들도 떠올려본다. 저 관광 상품에선 반지하 세트장이 환기하는 게 오스카인지, 영화 속 장면인지, 빈민과 빈곤인지에 관한 고민이 없다. 탐방 코스엔 왜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 또 다른 누군가의 구경거리가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도 빠져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밀려나갈 주민에 대한 걱정도 없다. 모든 이의 주거는 최소한의 존엄을 유지해야 하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성찰도 없다. 저 복원이니 코스니 하는 것들에선 다세대주택·반지하·옥탑방·쪽방에서 사는 이들의 인권을 찾을 수 없다.

주거권은 인권이라고 새삼 다시 말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헌법(제16조)은 “모든 국민은 주거의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1948년 세계인권선언에도 ‘적절한 주거에 대한 권리’가 들어 있다. 유엔 해비타트 의제는 적절한 주거를 실현하는 게 국가 책무라고 말한다. 적절한 주거 요건엔 물리적 환경에다 ‘사생활 보호’도 들어간다.

한국 사회에서 부동산과 주거는 계급과 차별, 혐오의 지표다. 주거 형태와 부동산 가격을 두고 무슨 ‘충’이니 무슨 ‘거지’니 하는 말들이 나돈다. 같은 아파트인데도 임대아파트 주민들은 ‘격리, 배제’ 당한다. 주로 아이들이 이 세태로 상처를 받는다. 차별과 혐오가 향하는 건 주로 약자, 소수자다. 성소수자들이 주민 반대로, 지자체의 지원 중단으로 공동주택에도 입주하기 힘든 게 지금 현실이다. 

이른바 ‘진보정권’ ‘촛불정부’의 인권은 뒤틀렸다. 고공농성 중인 삼성 해고자 김용희나 마사회를 비판하며 죽은 문중원 기수의 죽음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족의 인권은 뒷전이다. 정권의 ‘추미애 법무부’와 ‘조국 법무부’가 인권을 내세우며 강행한 공소장 비공개, 형사사건 공개금지 같은 드라이브는 현재로선 ‘조국, 최강욱, 이재용’ 같은 권력자들의 ‘인권’만 강화한 꼴이다.

추미애는 장관 임명 전후 ‘인권과 민생’을 강조했다. 주거권 문제를 보면, ‘계약갱신청구권(계속거주권)’이나 ‘전·월세 인상률 상한제 도입’ 같은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이 법무부 일이다. 이주노동자와 난민 정책 주무 부서도 법무부다. 인권 문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차별금지법이다. 한국 최초의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2007년 노무현 정부 때 법무부가 발의한 것이다. 추미애는 2013년 국회의원 발의 때 이름을 올렸다. 2017년 민주당 대표 시절 추씨가 희귀성이라며 ‘성(姓)소수자 대표’라는 말장난을 했던 시절에 머물러 있지 않기를 빈다.

<김종목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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