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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정동에 있는 한 커피전문점은 오후 8시까지만 한다. 왜 그런가 물어보니 알바(아르바이트생)를 못 구하기 때문이란다. 광화문에 있는 이름난 식당은 오후 9시까지만 한다. 이곳은 셰프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두 곳 다 돈을 더 준다고 해도 일할 사람이 없단다. 심야에 택시 잡기 어려운 이유를 물어보니 밤에 일할 젊은 택시기사가 없다고 한다. 소규모 건축사 사무실 중에는 최근 SNS를 하는 곳이 많은데, 영업 때문이 아니라 직원 채용 때문이라고 한다. 

올해 7급 국가공무원 공개경쟁채용시험 경쟁률은 1979년 이후 43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잘나간다는 네카라쿠배(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달의민족)도 다를 바 없다. 쓸 만한 IT 전문가를 뽑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태풍 힌남노로 침수됐던 포스코는 전기설비 긴급복구를 위한 전기기사에게 일당 125만원을 제시했다. 현장에서는 170만원이 지급됐다는 말도 있다. 빨리 고로를 정상화시켜야 하는 시급성에다 추석연휴까지 겹친 탓이지만 기본적으로는 일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최근 만난 경북 지역에서 일하는 한 전기기사는 “제 나이 50인데 아직도 막내”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4학년과 7세 유치원생을 둔 지인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 첫째가 유치원 갈 때 뽑기를 해서 떨어져 한 달간 맘을 졸였던 그는 올해 둘째는 똑같은 유치원에 곧바로 보냈다. 5년 만에 찾은 유치원은 인원미달이었다. 첫째가 다닌 어린이집은 이미 문을 닫았고, 그 자리에는 편의점이 들어섰다고 한다. 2012년 1만4700개에 달했던 문방구는 올해 8000여개로 줄었다. 대형 문구체인이 진출한 것도 이유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문방구에 갈 아이들이 없다. 강남의 유명 입시학원들은 잇달아 초등영재반을 개설하고 있다. 입시생만으로는 수지타산을 점점 맞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미 대학입시생은 대학입학정원보다 적다. 수도권 쏠림 덕에 ‘인서울’ 대학은 몇년 더 버티겠지만 그래봤자 시간문제다. 

지난해 태어난 아이는 26만5000명이다. 90만명이 태어났던 1970년대 X세대는 말할 것도 없고, 40만명대 초중반씩 태어났던 밀레니얼 세대와 비교해도 반토막 났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시점에 맞춰 ‘사람이 없는’ 상황은 더 가속화된다는 얘기다.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이 차례로 급감한다. 전국 대학입학정원이 49만명이니까 산술적으로 보면 20년 내 교육기관의 절반은 문을 닫아야 한다. 

인구 감소는 더 이상 통계 속에 존재하는 숫자가 아니다. 몇해 전만 해도 도심은 밤 12시에도 불야성을 이뤘고, 테마파크마다 인산인해를 이뤘지만 어쩌면 다시는 그런 시절이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코로나19가 그 시점을 좀 더 앞당겼을 뿐 이미 예견된 미래였다. 생산이 줄고, 파는 곳이 줄고, 소비가 주는데 높은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상황은 급박하지만 정부의 긴장도는 그에 따르지 못하는 것 같다. 윤석열 대통령이 “모든 분야의 정책을 총동원하라”고 말했다지만, 이 정도 레토릭은 전 정부에서도, 전전 정부에서도 했다. 이민청 설립도 이제 논의가 되는 수준이라 진정성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정부가 내년에 깎겠다는 예산을 보니 청년과 보육 관련 예산이 1순위다. 내년 삭감 대상 예산 24조원 중 청년추가고용장려금, 청년채용특별장려금 등 청년 관련 예산만 족히 2조원이 넘는다. 초등돌봄교실 시설 확충, 초등돌봄 과일간식 지원 등 보육예산도 삭감 대상에 올라 있다.

인구대책의 1순위는 사람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지만, 정작 있는 사람마저 보호하지 못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느슨하게 하고 주 52시간도 완화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기업은 여전히 사람 앞에 있다. 서울 한복판에서 158명의 생때같은 청춘들이 숨졌지만 한 달이 넘도록 총리, 행정안전부 장관, 서울시장 등 책임을 진 고위공직자는 한 명도 없다. 

사람이 없다고 느끼는 것은 윤석열 대통령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최근 주요 기관에 자리 잡은 인사들을 보면 극심한 인물난을 실감케 한다. 검찰 출신을 제외하고는 뉴페이스를 좀처럼 보기 힘들다. 인물난은 정부 정책과 비전의 부재로 이어진다. 예컨대 노조와 노동자에 적대적인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은 화물연대 파업에서 어떠한 존재감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다만 윤석열 정부의 인물난은 인구 감소보다는 협량한 인재풀 때문이라는 것이 다르다. 참 사람이 없다. 사회도, 대통령 주변도.

<박병률 경제부장 mypark@kyunghyang.com>

 

 

연재 | 아침을 열며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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