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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유시민 전 의원이 정계를 은퇴했다. 이로써 3김 정치에 의해 사당정치와 지역주의로 왜곡된 한국의 자유주의를 아래로부터 당원이 움직이는, 제대로 된 근대적 정당과 탈지역주의로 바로잡으려던 ‘유시민 실험’도 실패로 끝났다. 사당정치와 지역주의에 대한 그의 비판적 문제의식의 정당성,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던 여러 재주들을 생각할 때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유시민 실험의 실패는 자초한 면이 많다. 구체적으로, 진정성보다는 단순히 재주에 의존하고, 긴 호흡을 가지고 옳은 길을 뚜벅뚜벅 걸어감으로써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눈앞의 작은 이익에 연연했던 ‘소탐대실 정치’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예를 들어, 그는 아래로부터 당원이 결정하는 정당을 주장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정치에 입문할 때는 지역구 결정을 무시한 민주당 지도부의 낙하산 공천에 의해 국회의원이 됐다. 또 지역주의와 싸우기 위해 적지인 대구에 내려가 국회의원 출마를 했다가 떨어지자 얼마 뒤 짐을 싸가지고 올라와 경기도지사에 출마했다. 특히 국회의원 야권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지역구를 놓고 자기 이익만 고집하다가 민심의 결정타를 맞고 말았다. 이 점에서 그는 비슷한 목표를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치적 멘토이자 동지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갔다. 그리고 그 결과 노 전 대통령과 같은 정치적 업적을 이루지 못했다. 다시 말해, ‘유시민의 길’은 긴 호흡에서 진정성을 가지고 지역주의 등 한국정치의 기성질서에 저항함으로써 ‘바보 노무현’이라는 말을 들으며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대통령 자리에까지 오른 ‘노무현의 길’과 달랐다. 즉 작은 것을 버림으로써 더 큰 것을 얻는 ‘소실대탐의 정치’와는 정반대인 ‘소탐대실의 정치’였던 것이 문제였다.


정계은퇴 선언한 유시민 (경향신문DB)


우려되는 것은 돌아온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가 유시민 전 의원과 비슷한 길을 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안 전 교수는 전성기의 유 전 의원과 비교하더라도 훨씬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등 유 전 의원과 다른 점이 많다. 그러나 안 전 교수 역시 한국의 전근대적 거대정당체제, 특히 전근대적 자유주의정당에 대한 비판에 기초한 개혁적 자유주의자라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유시민을 계승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진성당원에 의한 인터넷 정당과 탈지역주의 등 핵심 개혁 내용에서 자신과 중첩되는 안 전 교수의 등장이 유시민의 정치은퇴 결정을 촉진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안 전 교수가 작은 것을 버림으로써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고 이를 통해 더 큰 것을 얻는 ‘노무현의 길’과 ‘소실대탐의 정치’가 아니라 눈앞의 작은 이익에 연연해 더 큰 것을 잃어버리는 ‘유시민의 길’과 ‘소탐대실의 정치’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예가 안 전 의원이 적지인 부산을 피해 노회찬 진보정의당 의원의 의원직 상실로 공석이 된 노원병에 출마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특히 충격적인 것은 그의 논리이다. 그는 부산 영도를 택하지 않고 노원을 선택한 것에 대해 “지역주의에서 벗어나 민심의 바로미터인 수도권에서 새로운 정치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그렇다면 지역주의와 싸우기 위해 안 전 교수가 민심의 바로미터이기 때문에 출마한다는 수도권, 즉 종로의 의원직을 헌신짝처럼 던져 버리고 적지인 부산으로 내려가 낙선의 길을 걸은 바보 노무현의 길이 자기 출신지역에서 출마했다는 이유로 지역주의란 말인가? 노 전 대통령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모욕적 궤변이다. 솔직하게 “노원이 부산보다 당선 확률이 높아서”라고 이야기한다면 솔직성이라도 인정해 줄 텐데 이 같은 궤변을 늘어놓으니 할 말이 없다.


현재의 민주통합당은 희망이 없다. 따라서 그 형태가 어찌 되었건, 안 전 교수를 중심으로 한 야권의 개편이 시급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안 전 교수가 노무현의 길이 아니라 유시민의 길을 가는 한 그 한계는 뻔하다. 노무현의 길이냐, 유시민의 길이냐, 그것이 안 전 교수와 야권의 미래, 나아가 한국정치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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