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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어진 사람들이 모여 살 것 같은 산청(山淸)의 웅석봉 오르는 길이다. 초입에서부터 경사가 심했다. 지리산을 조망하기에 좋은 곳이라지만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내 고향 거창이 지척이다. 지리산에 더해 어머니 생각이 났다.
ⓒ이해복
세계적으로 장수하는 곳의 공통점은 산비탈에 자리한 마을이라고 한다. 경사로 인한 긴장감이 항상 몸에 전달되기에 그런 것인가 보다. 나보다 키 큰 나무들, 오래 사는 나무들. 저들도 모두 저 험준한 비탈에 살아서 그런 것일까. 그런 싱거운 생각을 해보는 것도 순간이다. 잠깐 치고 올랐는데 오늘 보려고 작정했던 나무의 군락이 일순 눈에 들어차기 때문이다. 외국어처럼 사뭇 생경한 이름이지만 한국 특산의 히어리다. 꽃이 조롱조롱 달려서 하늘로 올라가는 모양새가 날렵하다. 얼핏 보면 먹음직스러운 꽈배기 같더니 가까이에서 보면 눈이 뚜렷한 누에 같기도 하다. 오늘은 한두 그루가 아니다. 웅석봉 한 능선에는 노란 히어리가 붉은 진달래와 한껏 어우러졌다. 바람이라도 불어 출렁출렁 흔들릴 땐 어릴 적 시골에서 본 꽃상여(喪輿)를 떠올리게 하는 광경!
그리고 그 바닥에는 얼레지가 한창이다. 몇 해를 기다렸다가 나오는 두 잎, 하나만 달랑 올라오는 대궁과 그 끝에 오로지 하나만의 꽃이다. 얼레지는 한 골짜기를 온통 저들의 세상으로 물들이고 있다. 비단처럼 아름다운 잎이지만 약간의 독성이 있다. 입 있는 것들이 함부로 먹었다가 큰코다치는 잎이다.
처음 보는 얼레지는 아니었지만 볼 때마다 어김없이 마음을 설레게 하는 얼레지. 새침하게 토라져 입을 닫은 얼레지도 있고, 쪽진 머리처럼 한껏 뽐을 내는 얼레지도 있다. 민감하기는 이를 데 없어 두툼한 햇빛이 아니라면 함부로 꽃잎을 열지 않는 얼레지.
노랗고 붉은 공중과 보랏빛 골짜기. 그 단정한 빛깔을 어루만지며 바람이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바람 불 때마다 산 하나를 떠메고 가려는 듯 일제히 나부끼는 얼레지. 이번 바람은 내 오른쪽 뺨을 때리는가. 어머니 생각이 더욱 진하게 났다. 얼레지,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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