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산업혁명 이전에는 먹고살기 위해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일자리를 가지고 일했다. 이후 산업이 활성화되고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수요에 따라 장기간 고용되는 안정된 일자리가 늘어났다. ‘평생직장’까지 출현했다. 그러나 시대가 변화하면서 직업 상황도 달라졌다. 자동차 공유회사 집카의 창립자 로빈 체이스는 말했다. “아버지는 평생 한 가지 일만 하셨다. 나는 평생 여섯 가지 일을 할 것이고, 내 자녀는 동시에 여섯 가지 일을 할 것이다.” 암울한 미래가 아닐 수 없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모바일 앱이나 인터넷 접속과 같은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일자리 중개시장이 늘어나고 있다. 지금도 대부분 기업은 고객들의 수요에 대비해 직원을 뽑고 있다. 그러나 고객이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서비스를 요구하고, 서비스 제공자가 이에 대응하는 방식이 출현하고 있다. 배달, 대리운전, 퀵서비스에서 출발해 가사도우미, 간병 및 호스피스, 청소, 경비용역 등 점차 서비스 시장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을 ‘긱(gig) 노동자’라고 한다. 긱은 영어의 계약(engagement)이란 단어를 줄여 쓴 속어다. 1920년대 미국에서 재즈 연주자를 섭외해 짧은 공연에 투입하면서 긱이라고 불렀던 데서 유래한다. 프리랜서·독립계약자·임시직 등 단기 일자리 또는 비즈니스 모델이 확산하는 현상을 ‘긱 이코노미’라고 한다.

2018년 영국 옥스퍼드대는 ‘긱 경제의 근무조건이 직원의 웰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긱 업무의 유연성과 자율성의 대가로 받아들여야 하는 길고 불규칙적이며 경쟁적 성격의 고강도 노동은 웰빙의 저해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들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해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음식배달 플랫폼인 ‘배달의민족’이 3일 시간제 오토바이 운전자 보험을 이달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기존 노사관계를 통해 보호받지 못하는 배달 노동자들을 위한 보험 상품이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네트워크와 모바일 상거래 시장을 바탕으로 긱 경제 도입·확산이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다고 한다. 긱 노동자의 복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박종성 논설위원>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