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정치 칼럼

[여적]아빠 찬스

opinionX 2020. 1. 23. 10:40

가즈니 왕조의 마흐무드는 서기 1000년경 소아시아에서 갠지스강까지 영토를 넓힌 정복군주다. 그는 알렉산더 대왕에 비견되는 업적으로 술탄(통치자) 칭호를 처음 얻었다. 그는 회의를 하던 중 신하로부터 “한 튀르크 병사가 집과 침대에서 나를 쫓아냈다”는 하소연을 들었다. 마흐무드는 범인이 다시 찾아왔다는 말을 듣자 현장으로 달려갔다. 술탄은 집 안의 불을 끄도록 한 다음 범인을 잡아 처형했다. 그리고 기도를 한 뒤 소박한 음식을 요청해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술탄은 말했다. “내 아들이 아니면 그 같은 일을 할 사람이 없다. 내가 불을 끈 것은 아무도 모르는 상태에서 가차 없이 정의의 심판을 내리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대의 항의를 듣고 난 뒤 3일간 음식을 넘기지 못했다.” 술탄은 부자지간이라는 사사로운 감정에 흔들리지 않았다.

조선시대 영조는 아들인 사도세자의 허물을 덮어주지 않았다. 꾸짖고 또 꾸짖었다. 무수리의 아들인 영조는 빈약한 정통성으로 대소신료의 눈치를 봐야 했다. 그래서 아들이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한 왕으로 크기를 바랐다. 아비의 정은 내려놓았다. 선위까지 해주었지만 얼음처럼 차갑고 혹독한 훈육을 멈추지 않았다.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용상에 앉을 수 없다는 뜻이 단호했다. 아들은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아버지가 왕인 것이 오히려 불행의 단초였다. ‘아빠 찬스’가 아닌 ‘아빠 페널티’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 19일 앙골라 전 대통령의 딸 이사벨 두스산투스가 ‘아빠 찬스’를 이용해 20억달러에 달하는 부를 쌓았다고 보도했다. 그가 아버지(조제 에두아르두 두스산투스)의 후광을 업고 국영 석유, 다이아몬드 회사 등과 특혜성 계약을 맺었던 것이다. 남의 나라 일로만 치부할 수 없다.

문희상 국회의장의 ‘세습공천’ 추진이 논란이 되고 있다. 문 의장의 아들 석균씨는 4·15 총선에서 아버지 지역구인 의정부갑에서 출마하려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제2의 조국 사태’ 조짐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문 의장은 ‘아들의 뜻을 막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석균씨는 “아버지의 길을 걷되, 아빠 찬스는 거부하겠다”고 말했다. 국민이 이를 납득할지 의문이다.

<박종성 논설위원>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