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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 9단(왼쪽)과 신진서 9단이 지난 7일 한국기원에서 온라인으로 진행된 2022 삼성화재배 월드바둑 마스터스 결승 3번기 제1국을 마친 뒤 함께 복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정 9단이 지난 2월 14일 한국기원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며 바둑판을 들어보이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중국의 루이나이웨이 9단(59)은 바둑 역사상 최고의 여성 기사로 꼽힌다. 입단 3년 후인 1988년 여성 최초로 9단에 올랐고 1983년부터 2013년까지 30년간 여성 세계랭킹 1위로 군림했다. 1990년대 이후 전성기 때는 남녀 통틀어 세계 20위 안에 들었다. 1992년 응씨배 4강에 들어 세계대회 여성 최고 성적을 내고, 2000년 한국 국수전에서 당시 세계 5위 유창혁·1위 이창호·3위 조훈현 9단을 연파하며 우승한 일은 바둑계에 충격을 던진 사건이자 성과로 남아 있다.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하며 30년 이상 어린 후배들 못지않은 기량을 보이는 점이 대단하다.

한국의 최정 9단(26)은 2013년 12월부터 108개월(9년) 연속 국내 여성 기사 랭킹 1위를 지키고 있다. 현재 세계랭킹 69위로, 100위 안에 든 유일한 여성 기사이기도 하다. 국내·세계 최강이기는 해도 루이나이웨이에 비해서는 경력과 우승 실적이 한참 못 미치고 격차도 큰 게 사실이다. 하지만 루이나이웨이가 하지 못한 일을 해냈다. 이전까지 16강이 최고 성적이었던 그가 8일 끝난 메이저 세계대회인 삼성화재배에서 여성 기사 최초로 결승에 올라 30년 전 루이나이웨이의 4강 기록을 지우고 새 역사를 썼다.

일본 1위 이치리키 료 9단, 중국 강호 양딩신 9단을 잇따라 꺾고 4강에 오른 최 9단은 지난 4일 한국 2인자 변상일 9단마저 제치고 결승에 진출했다. 변 9단이 패색이 짙자 괴로워하며 눈물을 훔치고 자기 뺨을 때리는 모습을 보여 화제가 됐던 대국이다. 최 9단의 결승행이 이변임을 보여주는 장면 중 하나였다. 최 9단은 “잃을 게 없기에 치열하게 치고받아보자고 마음먹었다”면서 “내 생각의 한계를 뛰어넘어 기뻤다”고 말했다.

최 9단은 바둑판 위의 남녀 경계를 무너뜨리는 데 앞장섰다. 대개 남성 기사의 실력이 여성보다 낫다는 통념도 깼다. 비록 결승에서는 ‘절대 1강’ 신진서 9단(22)의 벽을 넘지 못하고 내리 두 판을 패해 준우승에 그쳤지만, 결승에 나간 것만으로도 눈부신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졌어도 이미 ‘전설’이 됐다. 최 9단은 루이나이웨이 9단을 롤모델로 삼고 있다. 60대를 앞두고도 열정과 애정으로 바둑을 두는 모습이 멋있다고 했다. 최정의 도전은 지금부터 또 시작이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오피니언 | 여적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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