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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김상민 기자

1989년 4월15일, 영국 프로축구팀 리버풀 FC와 노팅엄 포레스트의 경기가 열린 힐즈버러 경기장에서 94명이 압사하고 700명 넘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리버풀 팬들의 전세버스가 도로정체로 연착해 한꺼번에 몰린 게 시작이었다. 검표소에서 극심한 병목현상이 벌어진 상황에서 ‘누군가’가 출입문을 열었다. 몰려드는 관중은 통제되지 않았다. 양측면에는 다소 여유 공간이 있었지만, 인파는 이미 초만원이던 중앙구역으로 몰렸다. 경기 시작 5분 만에 보호철망이 무너지며 아비규환이 빚어졌다. 

경찰은 술에 취한 훌리건들이 표도 없이 경기장에 난입해 벌어진 단순사고라고 발표했다. 황색언론들은 리버풀 팬이 출입문을 열었다는 등 경찰이 흘린 정보를 그대로 받아썼다. 유족들은 경찰로부터 사망자가 술꾼 아니었느냐는 추궁까지 당했다. 하지만 시민들의 끈질긴 진상조사 요구 끝에 2012년 독립적인 인사들로 구성된 조사단의 보고서가 나왔다. 출입문을 열라고 지시한 사람은 당시 경찰 책임자였던 더켄필드 총경이었다. 대규모 경비를 관리해본 경험이 없는 그가 경기장 구조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았다가 사고를 촉발한 것이다. 직무태만이 미필적 고의에 의한 대형 살인으로 이어진 경우였다. 

경찰이 조직적으로 거짓말한 사실도 드러났다. 더켄필드는 문을 열라고 지시한 적이 없다고 잡아뗐다. 100건이 넘는 사고 관련 진술은 경찰에 유리하도록 조작됐다. 경찰 보고를 믿은 마거릿 대처 당시 총리도 경찰을 옹호했다. 축구경기를 즐기러 모인 평범한 시민들이 졸지에 죽음을 자초한 훌리건이라는 오명을 썼다. 

하지만 유족들의 문제 제기에 따라 법원은 2년이 넘는 심리 끝에 2016년 힐즈버러 참사 책임이 경찰에 있다고 평결했다. 영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사과해 사건 발생 27년 만에 망자들이 명예가 회복됐다. 2021년 뇌손상으로 32년간 투병하던 사고 피해자가 사망하면서 총사망자는 97명으로 늘었다. 이 사건은 안전보호에 실패한 공권력이 시민에게 책임을 전가한 대표적인 사례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로 155명이 압사당했다. 이들의 무고한 죽음에 누가 책임이 있는지 정확히 규명돼야 한다.

<최민영 논설위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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