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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인사검증에서 한 장관후보자가 학벌주의를 옹호하는 책을 낸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그는 책에서 ‘행복은 성적순’이라면서 명문대에 진학하라고 썼다. 비난이 쏟아지자 “책 집필 후 20여년이 흘렀고 그동안 생각도 바뀌었다”면서 사과했다. 하지만 좋은 학군을 찾는 ‘맹모’들의 행렬을 보면 세상은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입시부정 사건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를 증명한다.
유명 배우가 연루된 입시부정 사건으로 미국 사회가 들끓고 있다. 예일대, 스탠퍼드대,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등 명문대 부정입학에 입시컨설턴트, 학부모, 학교관계자가 가담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들은 시험감독관을 매수해 ‘대리 시험’ ‘답안지 바꿔치기’를 하거나 체육특기생 제도를 악용했다. 미국에서는 학생들이 실력으로 합격하는 ‘앞문 입학’과, 부모들이 거액을 내는 ‘뒷문 입학’이 공식화돼 있다. 그런데 제3의 방법을 만든 것이다. 주범인 입시컨설팅업체 대표는 “나는 ‘옆문 합격’ 루트를 만들었다. 학부모도 매우 만족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미국판 SKY 캐슬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기를 쓰고 명문대 진학을 고집하는 이유는 자녀들의 행복을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행복은 성적순일까. 세계 최고의 대학인 하버드대학에서 인생사례연구가 진행된 적이 있다. 1937년 하버드생 남학생 268명을 대상으로 72년간 조사했다. 최고의 대학이니만큼 대통령(존 F 캐네디)과 상원의원 도전자, 소설가, 유명 언론인도 배출됐다. 그러나 마약을 하거나 술독에 빠져 살다가 죽는 등 기대했던 삶을 살지 못한 경우도 허다했다. 조사 대상의 3분의 1은 정신질환을 겪었다. 이를 보도한 ‘애틀랜틱 먼슬리’는 “하버드 엘리트라는 껍데기 아래엔 고통받는 심장이 있었다”고 적었다. 연구진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이며, 행복은 결국 사랑”이라고 결론지었다.
한국 학부모들은 대학 이후의 진로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SKY 캐슬>을 보면서 비정상적인 입시교육을 개탄하지만 드라마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현실로 돌아온다. 그리고 ‘글래디에이터’가 된 자녀를 생사가 걸린 아레나로 떠민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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