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서 만나는 이들은 대부분 선하고 따뜻한데 운전대를 잡고 도로에만 나서면 사나운 사람들뿐이다. 온라인 언론 보도나 각종 사회관계망 매체의 댓글들에는, 직접 만나서는 도저히 입 밖에 내지 못할 말들이 넘쳐난다. 약자를 더욱 잔인하게 짓밟고 힘의 논리를 대놓고 옹호하는 말들이 솔직함을 명분으로 마구 던져진다. 대개는 누군가의 가족이고 평범한 사회관계를 지속하는 사람들일 텐데 자신이 괴물임을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 폭언을 일삼는다. 실제보다 과도하게 악한 척을 하는 위악(僞惡)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위악이라는 말은 전통시대의 한문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다. 한국과 일본에서만 쓰일 뿐 현대중국어에도 등재되지 않은 단어다. 선하게 보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니 위선을 하면 했지 위악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헤어지는 연인의 행복을 위해 일부러 악한 언행을 하는 비운의 주인공이나 더 큰 대의를 위해 악역을 자처하는 매력적인 히어로 등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익숙하긴 하지만,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보다는 절망적인 현실에서 약자가 택할 수 있는 자기방어 혹은 책임회피의 왜곡된 몸짓인 경우가 더 많다.
위선이 선을 가장한 악이니 그 반대말인 위악은 악을 가장한 선이 되는 것일까? 위선이 선이 아니듯이 위악 역시 당연히 선이 아니다. 내면은 그렇지 않으면서 남에게 잘 보이려 행하는 위선이든, 자신의 약함을 가리기 위해 과장되게 행하는 위악이든, 나 자신이 아니라 남을 기준으로 삼는 거짓된 양태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이런 행동이 오래 지속되다 보면 스스로마저 속게 되어서, 주어진 상황이 대개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사실도 잊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