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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유튜브만 믿어. 유튜브가 진실이야.” 이 말이 귓전을 때렸다. 한강에서 숨진 채 발견된 대학생 손정민씨 사건을 다룬 지난달 29일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에서 한 시민이 외친 말이다. 사건 진상을 놓고 한 달 넘도록 시비가 끊이지 않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들 말대로, 이젠 아무것도 못 믿고 유튜브만 믿는 세상이 된 걸까.

사건이 알려진 초기부터 손씨 추모와는 별개로, 사인을 둘러싼 갖가지 의혹이 제기됐다. 경찰의 초동 대처가 미흡했던 탓에 억측이 난무하고 음모론까지 횡행했다. 경찰이 이례적으로 수사 진행 상황을 공개하고 범죄 연관성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는데도 의심은 가시지 않고 있다. 지독한 ‘불신 사회’의 모습이다.

그 불신의 배경에 유튜브가 자리잡고 있다. 근거 없는 미확인 정보를 부풀리거나 일부러 조작한 거짓 정보가 유튜브를 통해 퍼지고 있어서다. 오로지 조회수 장사로 돈을 벌기 위해 이런 종류의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콘텐츠를 만들어 퍼뜨리는 일부 유튜버를 가리켜 ‘사이버 레커’라 한다. 교통사고가 나면 어디선가 쏜살같이 달려나오는 견인차(레커)를 빗댄 말이다. 이번 사건에도 뛰쳐나온 몇몇 사이버 레커가 무분별한 콘텐츠를 쏟아내며 많게는 수천만원대의 수익을 올렸다고 하니 기가 찬다. 진실에는 하등 관심 없이, 죽음마저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하는 이들의 행태는 추악할 뿐이다.

혹자는 무언가를 의심할 권리,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자유를 주장한다. 백번 옳은 말이다. 의심할 권리가 없다면 사회는 고정불변 상태에서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합리적으로 의심하고 합당한 문제를 제기할 때 이 권리가 보장되는 게 맞다. 그리고 권리에는 책임과 의무가 내재돼 있다. 이런 점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의심할 권리가 아무 제약 없이 누려진다면 세상은 부정만 가득한 채 극단적인 불신에 휩싸일 것이다. 거기서 음모론이 나온다.

<쉽게 믿는 자들의 민주주의>를 쓴 사회학자 제랄드 보르네르는 “나는 말(馬)이 존재한다는 것은 증명할 수 있지만, 유니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증명할 수 없다”고 했다. 무언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증명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도무지 증명할 수 없는 사안을 증명하라고 따진 뒤, 거짓임을 증명 못하니 내 주장이 맞다고 간주하는 음모론자들의 궤변을 지적하고 비판한 것이다. 그는 이런 궤변이 현대 인터넷 사회에서 전파가 훨씬 쉬워졌고, 짜증을 유발하는 정도를 넘어서 사회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충격을 가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손씨 친구 A씨 측이 소셜미디어 댓글 등을 통해 허위사실을 유포한 누리꾼들에 대해 강경한 법적 대응을 예고하자 선처를 호소하는 e메일이 나흘 만에 800여건이나 왔다고 한다. 확인되지 않은 허위·조작 정보, 이른바 가짜뉴스를 퍼날랐던 누리꾼들이 뒤늦게 반성에 나선 것이다. 가짜뉴스 전파의 해악과 심각성이 그나마 인식된 것이라 하겠다. A씨 측은 손씨 사망 원인 제공자를 A씨로 특정하고 개인정보를 공개한 유튜버를 모욕 등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는데 해당 유튜버는 “타당한 의혹 제기”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유튜브 안의 진실 공방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합당한 의혹 제기인지, 위법은 없는지 명확히 가려져야 한다.

유튜브가 가짜뉴스의 온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분명해졌다. 입맛에 맞는 콘텐츠를 반복해서 골라주는 유튜브 알고리즘이 확증 편향을 강화해 거짓 세상의 늪에 빠뜨린다. 전문가들은 유튜브가 ‘생각의 외주화’에 최적화돼 있다고도 한다. 유튜브 콘텐츠가 생각을 대신해주며 안성맞춤 의견까지 제시해 사람들이 내 것인 듯 그대로 따르게 한다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유튜브만 믿는다는 사람이 갈수록 늘고 있다.

유튜브가 퍼뜨리는 가짜뉴스에 속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귀에 솔깃하고, 이해하기 쉽고, 퍼나르기도 좋은 게 특징인 가짜뉴스를 가려내기도 만만치 않다. 장삿속으로 불량 콘텐츠를 방치하고 있는 유튜브 측에 전적으로 책임을 지라거나 콘텐츠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식의 방책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가짜뉴스에 빠져들 환경에서 벗어나는 게 급선무다. 일단 하루 이틀, 한두 달이라도 유튜브를 끊어보면 어떨까. 그동안 유튜브가 알려준 내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다고 ‘진짜로’ 생각하면서.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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